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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배운 사람들은 누구나 오가작통법을 다 알 것이다.
교과서적인 설명은 이렇다.
오가작통법은 5호(戶)를 1통(統)으로, 5통을 1리(里)로,
약간의 리를 하나의 면(面)으로 형성하여 면에 권농관(勸農官), 한성부에는 관령(管領)을 두어 호구의 동태를 보고하게 한 제도이다.
이건 교과서적 설명이 이렇다는 소리이고,
실제는 그러면 어땠느냐,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필자도 모르지만
대략 짐작할 만한 것은 있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이 오가작통법에서 5호씩 묶어 1개의 통을 구성한 내역이 적혀 있다.
예를 들어 5개 호를 연달아 쓰고 나서
그 5개 호는 하나의 통으로 여기에 통수를 지정해 놓는 것이다.
오가작통법이라는 게 말로만 되어 있는 도상 구조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겠다.
그런데
딱 봐도 이게 제대로 될 리가 없다는 것을 보는 순간 안다.
어떻게 아느냐.
오가작통의 통수, 쉽게 말해 아마도 그 통과 상부의 연락책쯤 되었을 그 통수를 누가 하는가 하면
그 5개의 호주 중에서 제일 띨띨하고 힘 없는 사람이 한다.
예를 들어 5개의 호주가 유학, 평민, 평민, 노비, 평민이면
그 5개 호가 묶인 통의 통수는 노비가 한다.
아마도 귀찮으니 이렇게들 정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노비가 무슨 그 통의 감시를 하겠는가.
이로써 오가작통이라는 게 시행 후 안드로메다로 곧 갈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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