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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족보와 호적에 솔직하지 못하면 한국근대사는 없다

by 신동훈 識 202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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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 이야기 한 거 같지만

일본 미츠비시상사의 창업자인 이와사키 야타로는 岩崎弥太郎

에도시대 그 집안이 완전하게 쫄딱망한 향사 집안으로 

향사집안 자체가 사무라이 계급에서는 바닥인데

아버지 대인가 할아버지 대인가에는 그 바닥을 치는 사무라이 자격까지 팔아버리고 

말 그대로 거지 같은 신분이 되어 있었다. 

일본 이토추 상사의창업자인 伊藤 忠兵衛는 에도시대 직물 소매상을 하던 집 출신이며, 

미쓰이 그룹은 에도시대 옷집인 에치고야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재계 막론하고 양반 후손 아닌 사람들이 없어서 

재벌 집안까지도 조상들은 양반집이라는 것인데

필자가 보기엔 모두 19세기에 흥기한 새로운 유학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마도 20세기 

일제시대와 대한민국 독립이후 활동한 많은 사람들의 가계를 추적하면

대부분 19세기 새로이 유학호를 단 집안 출신일 것이라 생각하며, 

원래부터 명문 대가집의 후손?

글쎄다.

필자가 보기엔 그렇게 그 수는 많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어찌 아는가? 

일본의 경우를 보면,

도쿠가와 300년 동안 막부는 

유사시 막부를 옹호할 세력으로 최후의 싸움, 아마겟돈 전투에서 자기들 편을 들어줄

우호적인 번과 직속 무사인 하타모토들에게 막대한 은혜를 베풀었고 

이들은 다시 자기 번의 고급 무사들에게 또 300년간 은공을 베풀었지만, 

막상 메이지유신 단계에 접어들자

300년 동안 잘 먹고 잘 살던 고급무사들은

누구 하나 목숨을 내놓고 막부를 지키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 도쿠가와 막부 300년 동안 호의호식하던 집안의 최고 정점인 공경들과 번주들은 화족으로 편성되었지만

고급무사들 집안 치고 제대로 유지된 집안이 드물며

메이지유신기에는 그러면 누가 출세했느냐, 

도쿠가와 삼백년 동안 고급 무사들에게 천대받으며 간신히 먹고 살던 하급 무사들, 

에도시대 조닌문화와 화례경제의 최대수혜자 상인들, 

이들이 그 악착 같은 노력으로 출세의 길을 달렸고 

그 아래를 나도 한번 세상이 바뀌었으니 출세 한번 해보겠다고 

죽도록 공부하고 일하는 젊은 이들이 떠받쳤다는 뜻이다. 

한국도 비슷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건대,

20세기 한국의 발전의 주역으로는 아무리 눈 씻고 봐도

19세기 이후 흥기한 신흥 유학호,

자기들이 양반이라 생각했지만

백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이들,


이 사람들 외에는 그 발전의 주역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혹시 그 외에 다른 사람도 또 있으면 한 번 알려주기 바란다. 

19세기의 소위 말하는 "유학호의 참칭자", 

"유학모칭자들"

이들이 그 이후 한국사의 주역이다. 

모두가 감추고 있어서 그렇지, 

제대로 족보 까고 조선시대 호적 까서 뒤져 볼 수 있다면 

필자의 말이 백프로 맞을 것이다. 

한국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지당한 사실이 확인 안 되는 이유가 뭐냐

이유는 딱 하나다. 

조선시대 호적이 몇 군데 빼놓고는 다 없어져서 그렇다. 

그게 아니고 수백년 치 시계열 자료가 동네마다 다 남아 있었으면

이미 한국 근대사는 예전에 다 구명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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