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한말의 과거가 폐지 되기 이전,
거의 끝물에 해당한 과거에는
이승만도, 김구도, 박정희의 부친도 응시한 전력이 있다.
이 세 분의 편력을 보자.
(1) 이승만:
이승만은 3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이승만의 6대조 이징하(李徵夏)가 음직(陰職)으로 현령(縣令)을 지낸 것을 끝으로 벼슬길이 끊기고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살아갔다.
도동서당에서 한학 공부. 이승만도 과거에 응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결과는 낙방.
과거가 폐지된 후 배재학당에 입학.
(2) 김구: 무려 11대조부터 벼슬길이 끊김. 9세부터 서당에 나가 한학을 공부.
17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 이후 동학에 입교.
(3) 박정희의 부친: 박정희의 12대조부터 벼슬길이 끊김.
박정희의 부친은 무과에 급제하여 정9품 벼슬을 지냈다고 함. 박정희의 부친은 동학에 입교.
위 세 분의 약력을 보면 알겠지만,
이 세 양반, 과거를 볼 때 떼가는 준호구를 보면
보나마나 직역은 유학, 친가, 처가 조상 8분은 몽땅 학생으로 되어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준호구를 들고가 과거를 봤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구한말에는 숫자가 너무 너무 많았다.
고종 때 응시자 수 20만 명이 넘는 과거가 무려 네 번이 있었다고 하니
향촌의 유학이라고 호적에 달린 사람들은 다 한 번쯤은 보러가지 않았을까.
문제는 저런 사람들 중에 실제 급제하여 출신자가 된 사람들도 나왔다는 말이다.
19세기의 과거 급제자.
그 가문을 따라 올라가면
박정희, 김구, 이승만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들은 과거 급제 후에도 미관말직을 맴돌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양반일까 아닐까.
이들은 유학모칭자일까 아닐까.
우리가 이 세 사람의 프로필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부분은
이들이 과거로 입신양명하는데 실패하자,
한 분은 기독교로,
다른 두 분은 동학으로 투신했다는 말이다.
구한말 열정적을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고,
이들의 과거를 따라 올라간다면,
18세기, 17세기, 16세기....
그 조상이 그 순간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19세기는 누가 뭐래도
소위 말하는 "모칭유학자"의 시대이며,
이들이 20세기까지 활약하여 만든 것이 바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다.
*** [편집자주] ***
김구는 백정의 아들이다.
본인 스스로 고백했으니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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