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 소재하는 운현궁의 노락당 문화재 안내판 설명문이다.
운현궁 노락당 雲峴宮老樂堂
Norakdang Hall in Unhyeongung Palace
지정번호 : 사적 제257호 , 시대 : 1864년(고종 1), 1996년 중수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164
노락당은 운현궁의 안채로서 노안당과 같은 해인 1864년(고종 1)에 지었다.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은 一자형인데,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온돌방을, 앞뒤로는 툇간을 튼 궁궐 내전 평면구성을 보여준다.
복도각을 통해 이로당까지 이어지게 한 방식은 운현궁의 특색이다. 노락당은 운현궁 안에서 유일하게 기둥머리에 익공(새 날개 모양으로 뾰족하게 생긴 공포栱包의 일종)을 장식하여 가장 높은 위계를 드러낸다. 여러 세부 기법은 조선 말기 궁궐건축에 버금가는 수법으로 손꼽힌다.
1866년(고종 3) 고종과 명성황후는 노락딩에서 가례를 올렸다.
내가 굳이 이 노락당 안내판을 든 까닭은 이것이 우리네 안내판 전형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 노락당만의 특징이 아니며 그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며 그래서 이것만으로도 우리네 문화재 안내판이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까닭이다.
이 안내판 무엇이 문제인가?
일일이 지적하기에는 기가 찰 정도로 문제가 많다. 저 기술 중 건축한 시기와 그에서 일어난 사건, 곧 고종과 민씨 결혼식만이 오직 논급할 가치가 있다. 그럼 나머지는?
단 하나도 쓸모없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저 설명이 아니라 해도 누구나 보아 눈에 들어오는 현상인 까닭이다.
무엇이 중요한가? 전면 몇 칸이며 측면이 몇 칸인지 하는 껍데기가 아니다.
저 건물이 운현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그것이 구체로 어떤 기능을 수행했는지 아니겠는가?
익공? 공포? 높은 위계?
눈꼽만큼도 안 중요하다.
물론 저와 같은 대목을 저 설명문은 '안채'라는 한 단어로 담지 않았느냐 반론하겠지만, 안채가 무엇인지 설명 하나 없다.
이걸 보면 저 문안은 누가 초안을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건축학 쪽에서 손을 댄 듯하거니와, 감수도 그런 데 종사하는 사람이 하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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