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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로마는 여전히 1953년 오드리 햅번의 시대?

by taeshik.kim 2023.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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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땅 행세 아무리 한대도, 또 가끔씩 로마의 휴일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저 영화는 내 세대가 아니라 선친 세대다. 저 영화가 나온 때가 1953년 한국전쟁 종결하던 시점이니,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내가 저 영화를 소비하면서 저를 잠시나마 이런저런 자리에서 불러내는 힘은 어린시절 주말을 명화에 말미암는다. KBS인가 MBC인가 매주말이면 외화 1편씩을 상영했으니, 그때야 저 영화가 언제적 만든 것인지 관심이나 있었겠는가?

OK목장의 결투니 황야의 무법자니 하는 서부영화가 활개하던 시대에 권총 찬 존 웨인 흉내를 내기도 한 힘이 시간을 초월하는 그런 상영 때문이었다. 

요새야 이 업계에서도 인디아나 존스조차 주말의 명화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그러고 보면 불과 반세기 전, 혹은 그보다 약간 못미치는 시대만 해도, 1960년대 생인 내가 1950년대에 나온 영화를 소비했으니, 그때는 과거가 현재와 착종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동시대, 지금 현재를 지구촌이 공유하는 시대라, 몇년만 흘러도, 아니 몇달만 지나도 까마득한 과거가 되는 시대다. 아차하다 동시대를 놓치면 영원히 나는 낙오하고 만다. 

베네치아광장에 갔다가 마침 퍼붓는 비를 잠시 피할 겸, 또 요기도 할 겸 들른 인근 어느 카페엔 손님이 나혼자였으니, 물끄러미 그 벽면을 바라보는데, 저 로마의 휴일 주요 장면들을 아주 고화질로 인쇄한 사진이 잔뜩 붙어 있더라. 

마침 로마를 방문한 어느 나라 공주를 취재하다가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만다는 야동보다 더한 뻔한 스토리지만, 저 스토리 하나로 로마는 얼마나 울거먹는지 모르겠다. 반세기를 훌쩍 지난 지금도 오드리 햅번은 결코 늙어서 쭈구렁 방탱이 할머니가 되어서는 안 되는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영원히 살아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자는 여전히 인기가 좋지 않아, 저때야 기레기라는 말이 없었겠지만, 70년 흘러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은 기레기다.

다만 70년 전 기레기 그레고리 펙은 오직 잘생겼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여전히 칭송받으니, 이 또한 역설 아닌가 싶다.

사라진지 서로마제국 기준 천오백년, 동로마 기준 오백년이 되었지만, 로마의 시간은 오직 단 하나로 고정됐으니, 1953년이다. 

저 시점에서 로마는 동결건조되었다. 영화 한 편이 지닌 힘이다. 
 
#로마의휴일 #그레고리펙 #오드리햅번 #로마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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