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월북 국어학자 류렬과 관련한 그의 국어학 주장 요지 하나를 소개했으니, 아래 기사는 그 무렵 그와 짝해서 별도로 작성해 송고한 내 기사다.
2000년 당시 여든두살 류렬은 이산가족방문단 일원에 포함되어 딸 류인자(당시 59세) 씨를 상봉했다.
<류렬의 국어 연구> [2000.08.17 송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그리하여 이 부문(국어)의 연구에서 부르죠아 반동학자들과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앞잡이들이 퍼뜨리고 있는 온갖 그릇된 관점과 주장, 방법론,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과 민족 분렬책동을 합리화하려는 궤변들에 대하여 리론적으로나 자료적으로나 응당한 타격을 주고 짓부셔버려야 한다".
1983년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나온 『세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 서문에서 이 책 저자인 류렬(82)은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한국전쟁 와중에 자진 월북한 그가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단 일원으로 부산에 살고 있는 딸을 만나기 위해 팔순 노구를 이끌고 서울에 나타나 각종 화제를 뿌리고 있다.
그만큼 그가 국어 연구에 남긴 족적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1918년 경남 출생인 류렬은 대하소설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아들 홍기문(1903~1992), 강원 출신 동갑내기로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월북했으며 최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김수경金壽卿과 함께 북한 국어학계를 이끈 3대 거목으로 평가된다.
그런 그가 1983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지의 각종 옛 문헌기록에 남아 있는 삼국시대 사람과 벼슬, 고장이름 820개를 모조리 적발해 그것을 풀어낸 『세나라(삼국)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를 출판했을 때 남한 학계는 경악했다.
이강로 단국대 명예교수는 지난 91년 발표한 글을 통해 비록 류렬의 연구에 나타난 많은 오류를 지적하는데 주력하기는 했으나 이 책에 대해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이두자료를 거의 완벽하게 수집하여 해독을 시도한 대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 뿐만 아니라 류렬은 남한학자들도 국어연구를 위해 필수로 인용하고 있으면서 북한학계의 국어연구를 집대성한 『조선말의 역사』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의 국어연구 양대축을 이루는 이 두 책을 통해 류렬은 학자들로는 '부르조야 반동학자'를, 학설로는 '민족분렬책동을 합리화하는 궤변들'을 타파하자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가 말하는 '부르죠아 반동학자'와 '궤변'은 도대체 무엇일까?
류렬은 이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힌 바 없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해답은 80년대에 남한으로 치자면 국립중앙도서관쯤에 해당하는 인민대학습당으로 좌천된 동료 국어학자 김수경을 통해 비로소 풀린다.
그는 80년대 『세나라 시기 말은 과연 달랐는가』라는 단행본을 통해 남한국어학자들이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 말이 지금의 영어나 프랑스 관계처럼 전혀 말이 안통하는 듯한 외국어로 설정하고 있음을 '민족분렬책'이라고 맹비판하고 있다.
비단 김수경이나 류렬 뿐만 아니라 북한국어학계는 한국어 계통을 부여-고구려어 계통을 이른바 북방계 언어라 하고 백제-신라어 계열을 남방계 언어라 해서 마치 두 계통 언어가 다른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심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북한 국어학계는 이처럼 한국어가 남방계와 북방계의 두 계열 혼합이라는 주장은 한국사의 독자성을 말살하려 했던 일제 식민어용 언어학자들에게서 비롯돼 해방 이후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남한학계 대다수가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수경이나 류렬이 말하는 '부르죠아 반동학자'는 특히 해방 이후 남한의 국어연구를 주도한 이기문, 이숭녕 전 서울대 교수를 겨낭하고 있다.
남한 국어학계의 이런 '민족분렬책'을 타파하기 위해 북한 국어학계는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 언어가 지금의 서울말-경상도말처럼 방언적 차이에 불과할 뿐이며 서로 만났을 때 통역을 세워야 할 만큼 외국어는 아니었다는 증거를 담은 연구를 쏟아내게 된다.
류렬의 『세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도 이두(리두)가 고구려에서 처음 발생해 백제·신라로 퍼졌으며 이것으로 표기된 삼국 고유명사를 한국어로 풀어낸 결과 삼국 언어가 방언적 차이에 불과할 뿐 한 계통이라는 증거로 삼고 있다.(사진있음)
taeshik@yonhapnews.ne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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