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장 내정 통보 당시 정재숙은 실크로드 탐방을 핑계로 중국인가 중앙아시아를 여행 중이었다. 유홍준이 참여한 답사였는데, 당연히 유홍준과 함께 있었다.
그런 그를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실 신미숙이 전화로 불러낸 것이다. 당신이 이제 청장이요, 조속히 귀국하셔서 임명장 받으시죠 하는 말과 함께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청장님, 이젠 저는 뽀뽀하심 안 됩니다 아시죠?"
정재숙은 문화재 기자 경력은 일천하다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썩 그와 동떨어진 삶을 산 것도 아니다. 여러 언론사를 전전하고 한겨레를 거쳐 이때는 늙다리 기자로 이름도 그럴 듯하게 무슨 문화전문기자인지 하는 타이틀을 달고는 졸업을 준비할 무렵이었으니
문화 부문 잡탕이라 할 만치 여러 분야를 섭렵했으니, 특히 간송미술관과 관계가 밀접해 최완수 사단 일원이라 해도 될 만치 고미술에 관심이 컸다. 이런 관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간송 사람은 각별하다.
고려대 출신인 그는 그가 원하건 원치 않건 그런 경력을 자주 들먹이는 편이었는데, 뭐랄까? 고대 출신이라면 상징화한 그런 이미지가 이 걸물 여기자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내가 보건대 절대 말술은 아닌데 술을 좋아하고 자리를 좋아했다.
그의 습성 중 사람들한테 말이 좀 있었던 것이 저 뽀뽀라, 걸핏하면 뽀뽀를 해대는 통에 처음 겪는 사람들은 당황하기 일쑤였다.
화통하고, 성격이 모나지 않고 기타 등등 문화재청장 후보로 올라간 그를 청와대가 이른바 평판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다 무난하다는 판정이 나왔지만 저 뽀뽀가 문제였다.
청와대서도 그를 문화재청장으로 낙점했지만, 저런 습성이 혹 문화재청 가서 재발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이니, 그걸 신신당부한 것이다.
그의 뽀뽀는 실은 그 1년 전에 아주 자최를 감췄다. 그래서 그건 다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청장으로 재임한 2년 반인가? 한 번도 뽀뽀는 없었다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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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장 정재숙] (2) 임명과 더불어 연판장 돌린 고고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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