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 김단장께서 폼페이의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모습을 석고로 떠내는 이야기를 여러 번 이곳에 소개한 한 바,
마왕퇴에도 비슷한 이야기는 있다.
마왕퇴 3호묘 발굴 현장에서 무덤을 파들어 가던 중
묘도의 흙벽 위에서 구멍 두 개가 동시에 나타난것이다.
처음에는 이 구멍을 도굴 구멍으로 생각했었는데 도굴구멍으로 보기엔 너무 구멍 크기가 작었다.
그러면 야생동물이 판 구멍인가?
그렇게 보기에는 반대로 너무 컸다.
이 당시 발굴단은 파들어가던 작업을 중단하고 이 구멍에 석고를 부은 다음 두어 시간 후 주변흙을 파내어 제거했는데
석고의 모습은 1 미터 정도의 사슴 뿔을 쓰고 무릎을 꿇은 채 양팔을 좌우로 벌린 형태의 "인형" 모양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 이 석고로 뜬 인형의 모습은 영화로도 촬영되었다고 하는데 온라인상에서는 그 모습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이 당시 석고를 구멍에 붓기를 지시한 사람은 왜 이렇게 지시했는지에 대해
학창시절 외국 미술사를 배울 때 본 기억이 있어 그렇게 지시한 것으로
이 인형은 원래 풀과 진흙으로 만든 것이고 머리만 나무로 조각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 모두 썩어 없어져 원래 있던 부분은 빈 공간으로 남은 것 같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를 중국학자들은 무덤을 지키던 존재로
예기 단궁편에는 "추령"이라고 나오는데
이 추령이 점점 발전하여 나중에 방상씨가 된다는 것이다.
추령이건 방상씨건 모두 귀신으로 부터 무덤안의 사자를 보호하는 것이니
이 인형의 흔적은 결국 무덤을 지키던 수문장이었을 터이다.
사라져 버린 인형의 흔적을 석고로 떠내는 이 기법은
아마도 당시 중국학자들이 "폼페이의 석고인 기법"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마왕퇴 발굴 기록을 보면 이 이야기는 하나의 해프닝처럼 지나가 버리는데
당시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분투하던 중국 고고학자들의 상황을 잘 볼 수 있는 일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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