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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전국 초묘 미라

[마왕퇴와 그 이웃-27] 곽말약의 실언 (?)

by 초야잠필 2025.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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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곽말약. 한참 힘들 때다.

 

마왕퇴 발굴 조사에 위에서 엄호사격을 한 두 인물, 

주은래와 곽말약도 문혁과 사인방 서슬에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는 것은 이미 말했다. 

그 중 곽말약은 마왕퇴 때문에 한 번 크게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

그 사연은 이렇다.

곽말약이 마왕퇴에서 발견된 1호 묘 미라가 도대체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묻는 일본기자의 질문에 

여담 삼아 했다는 이야기가 하나 떠돌았는데, 그 사연인즉슨, 

서한 문제 때 황제와 이름 모를 궁녀 사이에 난 사내 아이가 곧 나중에 한 경제가 되었는데 

문제의 아들을 낳은 후 질투하는 황후에게 쫒긴 그 후궁은 장사 땅에 몸을 숨겨 

자신이 낳은 아들이 나중에 경제가 된 후에도 자신이 모친임을 알렸지만 

경제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알려질까 두려워 하여 그녀를 장사땅에 모셔 두고 극진히 봉양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녀가 죽은 후 경제가 자신의 어머니를 묻은 곳이 바로 마왕퇴라는 것인데,

 이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 결국 사인방 귀에까지 들어가, 

마왕퇴를 감싸고 도는 것도 불쾌한데 거기다가 봉건 시대 지배계급을 미화하는 이야기까지 지어내어 퍼뜨린다고

강청이 아예 이 이야기를 들고 나와 곽말약을 공격하는 일까지 커져 버렸다. 

놀란 곽말약은 이는 근거도 없는 이야기로 뜬 소문으로 자신은 이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여

간신히 정치적 실각은 명하게 되었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곽말약은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일본 기자에게 여담 삼아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뭐가 이상하겠는가.

이야기꾼 곽말약이 이런 이야기 하나 지어 내서 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으니 

이런 소문이 퍼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곽말약 역시 고비마다 마왕퇴 발굴을 극구 옹호하는 입장이었지만 

그 자신도 위태위태한 상황이었음은 두 말 할 나위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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