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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마질차] (3) 청상과부 싱글맘이 된 김춘추의 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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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우리는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김경신金敬信(재위 785~798) 선대 계보를 추적하면서 그 5대조가 마질차摩叱次 혹은 마차摩次임을 보면서,

그런 마질차가 조선시대에 발간된 경주김씨계 족보에서는 655년, 신라 태종무열왕 2년 조천성助川城 전투에 낭당대감郎幢大監으로 출전해 백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김흠운金欽運의 아들로 등장함을 보았다. 

조선시대 족보는 그 역사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적지 않거니와, 무엇보다 그에서 보이는 계보들이 추리면 첫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토대로 삼아 후대에 만든 듯하거나 그에서는 보이지 않는 대목들이 보이는 까닭이라,

간단히 말해 선대 기록을 토대로 억지로 그런 계보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작동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경주김씨와 그 분파에서 나타는 신라시대 그 계보들을 보면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 적지 않거니와, 사기나 유사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 대목들을 과연 그렇게 간단히 그런 이유만으로 조작이라 몰아부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무엇보다 그 역사성을 볼 때 단순히 조작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정교한 느낌을 주는 까닭이다. 

이 이야기는 길어질 것이기에 이 정도로, 그러니깐 조선시대 족보에 보이는 계보라 해서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정도를 강조하는 것으로 삼고,

다시 마질차로 돌아가 이 문제가 혹 화랑세기를 필두하는 남당 박창화 관련 필사본 문건들에는 등장하는가? 등장한다면 그 구체 양상은 어떠한가? 이 문제를 파고 들고자 한다. 

위선 마질차는 화랑세기에 등장할 여지가 별로 없고 실제로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주변이라 할 만한 사람들은 더러 보이고 무엇보다 그 세트로 이해해야 하는 계보도인 상장돈장上章敦牂이라는 족도族圖에 무시하지 못할 증언이 보여 이를 검토해야 한다. 

앞서 소명태자昭明太子가 무열제武烈帝의 명으로 흠운欽運의 딸을 아내로 맞기로 약속했지만 일찍 죽었다. 흠운의 딸은 스스로 소명제주昭明祭主가 되고자 하니 자의후慈儀后가 허락하니 이가 곧 소명궁昭明宮이다. (32세 신공信功 전)

이를 위해 위선 소명이 누구인가를 해명해야 한다. 

소명은 문무왕 김법민과 그의 정비 자의慈儀[儀는 義라 쓰기도 한다]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이다. 따라서 무열제, 곧 태종무열왕 김춘추한테는 태손太孫이 된다. 장차 아들 법민 뒤를 이을 왕자였다. 

한데 이 맏아들 소명은 정혼한 상태에서 일찍 죽어버렸다. 결국 훗날 왕위는 둘째아들로 옮아가는데 그가 정명政明이라 죽고나선 신문왕이라 일컫는다. 삼국사기엔 정명을 법민과 자의 사이에서 난 맏이라 했지마는 화랑세기를 보면 둘째다. 화랑세기가 맞다.

문제는 정혼자인 김흠운의 딸. 그녀는 딴 데 시집갈 생각이 없었고 처녀로 늙어죽을 작정이었다. 수절하며 점지된 남편 소명의 사당을 지키는 귀신 대장으로 살겠다고 했다.

이를 재궁齋宮이라 한다.

이를 자의가 허락하니 이 맹랑한 여자는 본가를 나와 소명태자의 사당을 지키는 귀신집에 들어간다. 그가 거처하는 곳, 곧 소명태자의 재실을 소명궁이라 불렀고 이것이 곧 그녀의 봉작이기도 했다.
 

바늘? 그게 뭬야?



하지만 뒷간은 들어갈 때랑 나올 땐 기분이 다른 법이다.

수절? 내가 언제?

이런 날이 오지 말란 법 있는가?

더구나 수절하며 혼자 사는 여자 집에는 남자가 들끓기 마련이다. 그건 최음제하고 같아서 수절할수록 그것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남자들의 마수는 그만큼 더 들끓기 마련이다. 당해낼 재간이 있겠는가? 

열녀함양박씨? 그건 소설이니 가능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그것을 이기기엔 무수한 바늘 자국이 필요했겠지만, 허벅지를 고문하는 바늘은 언제건 버려도 대수가 아닌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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