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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막말의 사무라이 칼과 칼집

by 신동훈 識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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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무쌍한 에도시대 18세기 칼과 칼집. 이런건 쓰라고 만드는게 아니다.

 
근간 김단장께서 올리는 칼과 칼집의 글에 공감하는 바 많아 
글을 조금 같이 올려둔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에도시대 말, 즉 막말 시기 칼차는 관습에 대해 쓴 이야기가 있다.

원문에서 발췌하여 정리해서 써 보면 이렇다. 


칼은 본래 일신을 보호하기 위해 차는 것인데

오랜기간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점차 칼날은 완전히 없어졌지만 여전히 겉모양만은 꾸미게 된다. 

검술도 모르는 주제에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는 습관이라거나 

무사의 심벌이라 하면서 칼을 차고 다닌다. 

검술을 알지도 못하면서 칼을 차는 자가 열에 여덟아홉이다.  


칼로 먹고 산 사무라이들도 막말이 되면 칼을 쓰지는 않아도 
칼집을 꾸미고 다녔다. 

고도로 아름다운 세공품 칼과 칼집은 전부 에도시대 것이다. 

앞에서도 썼지만 에도시대 사무라이는 칼을 함부로 뽑지 않았다. 

뽑았다 하면 책임지고 할복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아코호 사무라이들도 대중은 열광했지만 

정작 본인들은 주군의 복수를 한 후 전원 할복한 것으로 안다. 

따라서 대대로 녹봉을 먹고 살아야 했던 사무라이들은 거의 칼을 뽑지 않았다.

검술은 배워도 대부분 목검 연습이었고 

진검 싸움은 막말 피비린내 나는 히토키리의 등장부터 다시 재연되었다. 

우리는 칼집을 꾸미고 내용물은 신경쓰지 않으면 

전란이 본격화하지 않은 단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칼집을 꾸미는 시기는 대개 전란이 끝나고 칼이 가지는 무기로서의 위력은 형해화하여 심볼로만 기능한 때이다. 

우리 청동검의 칼집이 화려한 시기는 

더이상 검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때인지도 모른다. 

이미 확고한 질서가 잡혀있어 굳이 칼을 쓰지 않아도 되며

칼집은 자신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회였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우리 청동검과 그 칼집은 
막말의 일본 사무라이 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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