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암반을 뚫어 만든 서한시대 중산국왕 유승劉榺 부부묘 만성한묘滿城漢墓
이 만성한묘滿城漢墓는 이곳에서 여러 번 소개했거니와, 그 중요성을 설파하는 논지도 펼친 적 있으니 저 앞을 참조해 주셨으면 하고
이에서는 서한시대 제후국 중산中山王 유승劉勝과 그 부인 두관窦绾을 묘실을 달리해 쓴 합장묘인 이 산중山中 왕릉을 몇 가지 도판으로 그 무덤 양태와 출토 유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이 무덤은 산중 암반을 뚫어 만들어 그 폼새가 동시대 그 양식을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독특성이 있다.
그 양태를 보면 바로 앞 사진은 두관묘 중에서도 주실主室 궁정穹顶이라, 저런 거대한 암반 땅굴을 만들어 무덤방으로 썼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기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다크 헤러티지 dark heritage? 저거야 말로 다크하기 짝이 없는 헤러티지다.
제발 생각하는 고고학 좀 했음 싶다.
앞 사진은 아마 유승묘 주실인가 싶은데, 발견 당시 조사 장면이다.
두 사람은 각각 시신을 옥의玉衣라 해서 옥판을 실로 엮어 수의로 제작해 입혔으니 앞은 두관 옥의다.
보통 서한시대엔 저런 옥판은 금실로 꿰맸으므로 금루옥의金縷玉衣라 하지만 둘은 금실을 쓰지는 않았다.
저 옥의를 잘 봐두어야 하는 까닭은 옥이 지닌 상징성과 그 무수한 변종이라
신라시대 지배자층 구성원 무덤이 금은옥으로 떡칠한 전통 역시 저 금루옥의의 신라적 발현이다.
단순히 금은옥을 장식으로 썼네마네 하는 말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그건 단순한 기술 descrition 이지 왜 why 를 파고드는 분석 analysis 가 결코 아니며 따라서 기술을 우리가 學이라 부를 수는 없다.
앞은 유승 옥의다.
금은옥金銀玉이 지닌 영원불변하는 속성에서 모든 탐구는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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