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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메이지시대 녹명관鹿鳴館의 유래

by 초야잠필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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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이지 시대에 지은 건물로 녹명관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어로는 로쿠메이칸이라 읽는다. 

에도성에서 도쿠가와가 쫒겨 난 후 덴노가 쿄토에서 쇼군이 살던 성으로 옮겨 앉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일본 황거(皇居, 고쿄)이다. 

일본은 개항이후 서구 제국들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있었는데 1880년대까지도 여전히 그러했다. 

일본은 조선에 무력으로 개입한 청일전쟁 시기까지도 여전히 서양 세력과는 불평등조약이었고

이 조약은 최종적으로 러일전쟁 이후가 되어서야 완전히 개정되어 사라졌다. 

아무튼 1880년대에 일본은 

불평등조약 개정을 위해 일본이 서양 못지 않은 문명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덴노가 사는 동경의 궁성 옆에 외국 빈객을 접대하기 위한 서양식 건물을 짓는데
이것이 바로 녹명관, 로쿠메이칸이다. 


녹명관을 기점으로 서양과의 활발한 불평등조약 개정운동을 했던 시기를 일본사에서는 이른바 녹명관 시대 (1883-1887)이라 부르는데, 

결국 녹명관을 지어 놓고 서양식 연회를 열어 유럽과 미국의 외교관에게 

일본도 유럽식 문명국임을 어필하고자 했지만, 

결국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당시 외무대신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것으로 끝났다. 

녹명관은 이름에서 보듯이 

시경의 소아편, 鹿鳴之什에서 딴 이름이다. 

呦呦鹿鳴  食野之苹  
我有嘉賓  鼓瑟吹笙  
吹笙鼓簧  承筐是將  
人之好我  示我周行.
呦呦鹿鳴  食野之蒿  
我有嘉賓  德音孔昭 
視民不恌  君子是則是傚  
我有旨酒  嘉賓式燕以敖.
呦呦鹿鳴  食野之芩  
我有嘉賓  鼓瑟鼓琴  
鼓瑟鼓琴  和樂且湛  
我有旨酒  以燕樂嘉賓之心.

시의 내용은 반가운 손님을 맞아 행해지는 도덕적이고도 이상적인 연회에 대한 이야기이니, 

녹명관을 지은 목적과 아주 잘 어울린다 할 것이다.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의 지식인들은 유교경전을 매우 깊이 있게 이해하고 

우리나라 조선건국 때 정도전이 경복궁 건물 이름 붙이듯이 

시경과 서경 등 오경의 구절을 자유로이 구사하여 건물 이름도 짓고 있는데

녹명관은 바로 그러한 경우의 좋은 예다. 

이러한 현상은 에도시대 이전에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것으로,

에도시대 3백년간 일본인의 유교 교육의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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