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김천이라 하지만 이는 편의상 그리 말할 뿐이요
내 본적은 경북 금릉군 대덕면 조룡1리 222번지니
이 조룡1리 뒤에는 항용 자연촌 이름이 따라다녔으니
양지말 혹은 양지마을이라 한다.
볕이 잘 드는 남향 마을이라는 뜻인데 냇가를 사이에 두고 그 건너편 마을은 음지말 혹은 음지마을이라 하니 볕이 등진 데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 샛터라는 동네가 있으니, 이 샛터가 실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샛터와 음지말 양지말을 지나 소백산맥 중턱으로 십리를 들어가면 봉곡사鳳谷寺라는 사찰이 있고, 그 사찰 아래에 동네가 두 군데 있으니 이를 통칭하여 새재라고 그 위치에 따라 아랫새재 윗새재라 한다.
새재라 하니 이는 볼짝없이 재넘이 마을이란 뜻이다.
지금도 김천 시내에서는 자동차로 40분을 더 들어가는 이런 촌구석에 태어나고 자랐으니,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만 해도 일제시대 전통이 무던히도 강고해
이런 동네에서 출세의 최고점은 면서기였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만 해도 이런 전통은 여진이 계속되었으니, 하기야 이런 동네에 무슨 대학에 간 사람이 있으리오?
학교 문전에는 가 보지도 못한 내 선친, 그리고 내 엄마가 대학이 무엇인지 알리오만,
이런 당신네들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나, 이런 당신들에게 최고의 관문은 경북대 법대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정 대학 특정 학과를 거론해서 혹여 이 말이 그네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는 하다만, 아마도 당신네들이야 아들놈이 경북대 법대 나오면 면서기는 할 줄 아셨나 보다. (2015. 5. 1)
'ESSAYS & MISCELLAN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당계의 절대 강자 임경업, 마침내 조기시장도 접수하다 (0) | 2023.05.02 |
---|---|
아버지 잘 만나는 일보다 더한 축복없다 (0) | 2023.05.01 |
고구려 太祖王의 柵城 巡狩와 封禪 (0) | 2023.05.01 |
권력투쟁이 없는 천황위天皇位 (0) | 2023.05.01 |
사이프러스나무[1] 고흐가 매달린 지중해다움의 표상 (0) | 2023.04.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