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엔, 혈기가 방장해 머리 꼭대기로 폭발할 것 같은 시절엔
고향을 탈출해 서울에 정착하는 게 꿈이었다.
그보다 나이 들어 이젠 서울을 돌아보니,
서울을 탈출하고 국경을 넘고 싶다.
더 늙어 설혹 그런 날이 온다 해도 이번엔 나는 아마 지구 탈출을 꿈꿀 듯하다.
모르겠다. 내가 흙으로 정착할 곳은 고향 아버지 곁이겠지만,
만족을 모르는 내가 역정을 돌아보니,
서울이 대표하는 도회지인들이 갈망하는 단계보다 나는 한 단계를 더 건너야 했으며
그만큼 시간이 더 걸렸다고 자뻑하지 아니할 수 없다.
100미터 경주를 하는데, 나는 150미터 지점이 출발선이요
혹 어떤 이는 50미터 지점이었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리는
아버지를 잘 만나야 한다는 거다.
농부 아버지 만난 아들은 서울에 산데도, 뉴욕에 산데도, 달에 산데도 언제나
다마네기 농사를 자랑스레 얘기할 것이로되
그렇지 않는 자식들은 혹 언제나 인류를 논하고, 평화를 논하고
철학을 논하지 않겠느뇨? (2015. 5. 23)
***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네 애빈 출발선이 150미터였다.
가랭이 찢어질 듯 했고 숨이 멎었다.
내가 너한테 해주고 싶은 오직 한 가지는 너를 출발선 100미터 지점에 갖다놓는 일이었다.
이젠 네 몫이다. (2018. 11. 16)
***
제아무리 내가 포기한 자유방임형 아부지라 해서 왜 나라고 욕심이 없겠노?
사마구 찾아 경주 금척리 고분군을 달리는 너를 내려다 보며 자꾸만 나의 아부지, 그러니 너의 할아버지가 오버랩한다.
뭐가 되어 줄 거냐 묻지는 않겠노라.
다만, 네 할아버지 한을 너가 풀어주었으면 하노라.
그 한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니 애빈 지난 반세기를 정신없이 달려 왔는데 그래도 니 애비는 억울한 생각만 불쑥불쑥 드노라. (2014. 10. 12)
***
내가 하도 이런 말을 하니 못난 아버지 원망하지 않느냐 하겠지만, 그런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다만, 그럼에도 그런 처지에서 이만큼 나를 오게 한 힘은 그 아버지 힘이라는 종교적 믿음이 있다.
이건 죽는 순간까지도 변치 않을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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