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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멸망의 역사를 담담하게 볼 노력

by 초야잠필 2023.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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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한국사에 식민사관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없었다고 한다면 그건 착각이라고 본다. 

일제시대 만들어진 한국사의 전체 뼈대는 분명히 패배자의 역사를 '그러니까 이 역사는 안돼'라는 시각에서 쓴 부분이 있었고 

그런 부분은 해방이후 치밀한 고증에 의해 고쳐져야 할 부분임도 틀림없다. 

이 때문에 식민사관의 극복이야말로 해방 이후 한국사학이 짊어져야 할 최대의 태스크로 간주되어 왔는데, 

재미있게도 최근에는 이러한 '식민사관'-정체성과 타율성 등은 전혀 다른 이유에서 해결될 징후가 보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해방이후 한국이 지지리도 못살던 삼류 후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불과 몇십년만에 도약하면서 

이러한 식민사관적 파라다임은 더이상 무의미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을 두고 '정체성'과 '타율성', '열등성'을 이야기 한다고 해서 그걸 수긍할 세계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역사연구고 나발이고 할 필요도 없이 해방이후 한국의 발전이라는 현세계적 현상에서 이 역사의 난제는 해결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이쯤되면, 

한국도 수천년에 걸친 장구한 역사에서

패배와 쇠퇴, 멸망의 역사를 좀 더 담담하게 바라볼 시기가 왔다. 

한국사의 타율성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방식이 '위대한 조선의 인문 문명'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선후기의 역사연구가 한국인에게 던져진 최대의 과제는

영조와 정조대의 찬란한 조선 문명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왜 한국문명이 쇠퇴했고 끝내 식민지로 마감했는가를 가감없이, 

용기있게 사실을 직면하면서 바닥까지 파고 드는 것이다. 

쇠퇴의 역사에 대한 분석이 인류사의 연구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은 

기본의 '로마제국 흥망사'에서 볼 수 있는데, 

로마제국이 왜 흥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도 흥미가 없다. 

잘난 놈이 잘난 일을 했다는데 거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기본의 저술의 방점은 "흥기"가 아니라 "쇠퇴와 멸망"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왜 쇠퇴횄는가? 왜 멸망했는가? 

그리고 그 쇠퇴의 역사는 마침내 어떻게 극복되었는가?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문명이라면 당연히 쇠퇴와 멸망의 시기는 두세 번은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를 역사가라면 좀 더 담담하게 바라보면서 그 쇠퇴와 멸망의 흐름을 노래하기 바란다. 

한국사에도 이제 그 쇠퇴와 멸망의 역사를 매의 눈으로 관조하며 파고들 대 역사가가 한 명쯤 나올 때가 되었다. 

조만간 그런 대학자를 한 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가 보기에 조선후기의 역사는 그 쇠퇴의 황혼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역사를 서술해야 할 시기이지, 

여기다가 엄청난 문명으로 분칠을 하며 자족할 그런 시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시도는 아주 간단한 질문으로 전체 구조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 

'도대체 조선후기가 그렇게 대단한 문명이라면 도대체 왜 식민지가 되었다는 말인가?'

이 대답에 답을 달 수 없다면 지금 한국사의 파라다임 자체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 바로 조선후기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민예품에서 찬란한 한국의 민속문화를 볼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쇠퇴한 문명의 흔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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