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한일 영어교육의 기원

by 초야잠필 2023. 8. 13.
반응형

최근 한국의 국위가 상승하다 보니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은 정말 많다. 

특히 한국말의 디테일 한 부분까지 구사하는 외국인을 보면 더 찬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나는 부분은

이들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운 기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다. 

물론 잘 하는 사람들만 티비 등에 노출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한국과 일본인의 경우 초중고 대학에 일반인이 되어서도 영어에 투자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외국인들보다 영어 대화가 정말 잘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한 10년 한국어를 했다는 외국인들,

특히 요즘에는한국에 장기체류도 하지 않고 다만 자국에서 배웠다는데도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내 영어도 나름 수십년의 시간을 투자한 영어인데 과연 원어민에게 내 영어가 저 정도로 유창하게 들릴까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인의 경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외국어를 할 때와 뭔가 다른 것은, 

대화가 안될 뿐이지 읽거나 formal 한 작문을 쓰는 것은 굉장히 잘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슈퍼마켓가서 껌 한통 사는데도 의사소통을 겪는 사람들이 어려운 원어전공서적은 척척 읽어내고 

미국 출장 때 그곳 빵 가게 가서 이 빵의 재료가 뭐냐고 묻기도 힘든 사람들이 학회에 가서 발표하고 질문 대답은 또 그럭저럭 한다는 말이다. 

유능하다고 소문난 외교관이라는데 영어 발음은 된장 영어일 때도 많다. 

아마 그 양반들도 일상대화보다는 외교가의 공식 영어가 훨씬 편하고 쉬울 것이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필자의 동료들 중에 국제학회에서 우수한 발표를 한 분들의 공통적 고민 토로가 뭐냐하면, 

국제학회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연구 발표 때도 아니고 질문 응답도 아니고, 

바로 학회 행사후 저녁 때 참가자들이 모여 같이 밥을 먹는 간친회 (banquet 혹은 리셉션)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때가 되면 외국 동료들과는 일상 대화가 안 되어 두세 마디 인사 주고 받고 나면 긴 대화를 주고 받는 화제가 더 없는 상황이라

우습게도 국제학회를 가보면 테이블 한쪽에는 일상대화가 잘 안되는 한국-일본 학자들이 함께 모여 동병상련으로 조용히 밥을 같이 먹고 있는 광경을 자주 본다. 

아마 필자의 이 이야기를 듣고 눈치 챈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한국과 일본인들이 아직도 하고 있는 "영어"는 그 기원이 일본 개화기의 "난학영어"다. 

외국인과의 유창한 의사소통보다 근대화와 선진화에 필요한 정보를 쏙쏙 뽑아내는데 특화한 영어라는 말이다. 

이 때문에 일상 생활 대화는 어려움을 겪지만 기술분야의 자기 전공의 최신 경향을 입수하고 자기 성과를 발표하고 이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데는 딱 문제 없는 순간까지 영어가 올라간다는 말이다.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영어를 하지만 상대방이 쓴 외교문서는 읽어내고 학술논문은 읽어낼 수 있는 능력. 

이걸 배양하는데 최우선 목표를 둔 것으로 이를 "난학영어"라 할 만하다. 

한국의 영어는 "성문종합영어"로 상징되는 난학영어의 아류가 해방이후 공교육에서 시행되었는데, 

이런 영어교육의 전통이 질기게도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와 한국인들이 여전히 일상대화에서 버벅거리지만 자기 전공영어를 읽어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난학영어"는 한국에서도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것이 유창한 영어로 슈퍼마켓에서 껌 한 통 살려고 배우는 것이 아닌 이상, 

이런 영어로라도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이런 난학영어의 수명은 의외로 길지도 모르겠다. 

문화재 설명 게시판의 영어도 "난학영어"의 좋은 예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