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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모란은 억울하다

by 한량 taeshik.kim 2020. 9. 7.

1764년(영조 40) 조선통신사 파견 때 일본 에도막부가 선물한 금병풍모란도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수록한 신라 선덕여왕에 얽힌 모란 이야기, 곧 당 태종 이세민이 모란 그림과 모란씨를 보냈는데 그 모란 꽃에 나비가 없음을 알고는 그 모란씨가 발아한 모란꽃은 향기가 없을 것임을 선덕이 알았다는 이야기는 모란을 둘러싼 곡해 하나를 낳게 하거니와

 

이르기를 모란꽃은 향기가 없다는 것이니,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한테 주어진 각종 모란은 꽃이 진하기 짝이 없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가 그런 이야기가 모란을 곡해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할 점은 저 이야기 어디에도 모란은 본래 향기가 없는 꽃을 피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대신 이세민이 보낸 모란은 꽃이 향기가 없는 특수품종이라는 말을 강조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융릉 병풍석 면석의 모란

 

내친 김에 동아시아 역사를 보건대 모란이 도입 재배되기 시작한 시점은 8세기 들어와서, 대체로 서기 750년 무렵이고, 그런 모란이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곧 한반도와 일본열도까지 장악한 시기는 서기 800년 어간이어니와, 이때 백거이 유우석은 모란을 소재로 하는 각종 명편을 쏟아냈다. 

 

모란은 800년 무렵이면 비로소 장강 유역 강남으로도 진출하거니와

 

모란이 8세기 이전에는 있을 수 없다는 이런 사실은 첫째, 그 이전 시대 모란을 소재로 하는 고고미술품이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아니하고, 둘째 그 방대한 시문 앤솔로지인 전당문全唐文 전당시全唐詩를 봐도 8세기 이전 모란을 노래한 작품은 단 한 점도 없다는 점에서 명약관화하다. 

 

다만 모란이라는 말은 한대漢代부터 주로 의학서를 중심으로 간헐로 등장하기 시작하거니와 이를 근거로 동파 소식 같은 경우에는 모란이 한대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나, 이에서 말하는 모란은 우리가 아는 그 모란과는 종자가 전연 다른 약용식물이었다. 

 

모란 병풍 앞에서 악수하는 한-우즈벡 영부인

 

700년 이전에는 모란이 있을 수 없다는 이런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심대한 고민을 유발하는데 다름 아닌 신라 설총이 지었다는 화왕계花王戒라는 작품이 과연 설총 작품인지 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설총은 원효의 아들로 이 작품을 지어받친 때가 대략 700년 어간이라 이 무렵에는 신라에는 모란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된 셈인가?

 

화왕계는 설총 작품일 수가 없다. 후대 다른 사람 작품이 그의 작품으로 가탁되었다. 

 

www.youtube.com/watch?v=FPVVG2wcOIc

 

댓글3

  • 四叶草 2020.09.07 20:38

    또 하나 모란이 억을한 만 한 것은 중국에서는 牧자를 쓰는데 한국에서는 牡를 쓰더군요. 삼국유사는 어떨까 했는데 중국식으로 썼군요. 그렇다면 牡을 쓰는 것은 일본의 영향일지 싶습니다. 일본에선 다스리다와 수컷이 같은 개념? 결국 모란을 곡해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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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四叶草 2020.09.07 21:29

    화왕계에서는 모란이란 말이 없지 않습니까? 뜻은 통하지만 꼭 그 품종을 표시한 것은 아니라서 어떤 으뜸가는 꽃이라는 설정은 모란과 무관하게 할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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