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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한반도에 침투하는 생일

by taeshik.kim 2020.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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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더곰까지 침투한 생일잔칫상

 

 

앞선 글에서 나는 동아시아 생일이 황제를 기준으로 당 현종 때 탄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런 생일이 한반도에도 침투하기 시작하니, 이를 고려사절요에서 죽 뽑는다. 빠진 것이 있을 줄로 알지만,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본다. 나아가 이를 정리한 글도 내가 보기는 했다. 

 

제4권 정종 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병술 12년(1046) ○ 12월에 백관이 건덕전에 나아가 성평절(成平節)을 하례하고, 재추(宰樞) 급사중승(給舍中丞) 등 왕의 시신(侍臣)들에게 선정전(宣政殿)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성평절은 왕의 생일이다. 승록사(僧錄司)가 아뢰기를, “이제부터 성평절이 되면 국가는 기복도량을 외제석원(外帝釋院)에 7일 동안 설치하고, 백관들은 흥국사(興國寺)에서, 동서 양경ㆍ4도호ㆍ8목은 그곳에 있는 절에서 각각 치르도록 하여 정례로 만드소서." 하니, 따랐다.

 

제4권 문종 인효대왕 1(文宗仁孝大王一) 정해 원년(1047) 2월...외제석원에 행차하였다. 이로부터 사원에 자주 거둥하였다.

 

 

생일케이크 받는 문재인 대통령

 

 

제6권 숙종 명효대왕 1(肅宗明孝大王一) 병자 원년(1096) (봄 정월) ○ 왕의 생신을 대원절(大元節)이라고 하였다. (동 즉위년조에 '선종(宣宗)의 동복 아우로서, 문종(文宗) 8년 갑오 7월 기축일에 났다.'고 했다)

 

제7권 예종 문효대왕 1(睿宗文孝大王一) 병술 원년(1106) 봄 정월 ○ 왕의 생신을 함녕절(咸寧節)이라 하였다.

 

제10권 인종 공효대왕 2(仁宗恭孝大王二) 병인 24년(1146) ○ 여름 4월에 왕의 생일을 하청절(河淸節)로 삼고, 여러 신하의 조하를 받았다.

 

제21권 충렬왕 3(忠烈王三) 병신 22년(1296) ○ 봄 정월에....이죄(二罪) 이하를 사면하고 지방 공물을 3년간 면제하며, 가난한 백성이 조세로 인하여 자식을 판 자는 관에서 이를 보상하고 돌려 보냈다. 이때 왕의 나이 61세였는데, 술객術客들로부터 환갑해가 액년厄年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은택을 내려 사면을 베푼 것이다.... ○ 2월에 중찬으로 치사한 한강韓康을 불러 이르기를, “과인이 왕위에 있은 지 이미 오래되었고 금년이 환갑이니, 더욱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 간절하다 경은 마땅히 꼭 행해야 할 일을 조목조목 진달하라." 하였다. ○宥二罪以下,蠲外貢三年,貧民因租稅而鬻子者,官贖還之,時,王年六十一,術者,有換甲厄年之說,故推恩肆宥。...二月,召中贊致仕韓康曰,寡人在位已久,今年換甲,尤切愼兢,卿宜條陳合行事宜

 
○ 왕이 서교(西郊)에서 사냥하니, 국사승國師僧이 글을 올려 아뢰기를, “전하의 환갑년換甲年이니, 조심해서 덕을 닦으셔야 되지, 놀이나 사냥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내 굳이 사냥을 좋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를 쫓으려는 것이다." 하였다. 사실은 공주가 질투하는 것을 꺼려 사냥을 핑계로 나와 사랑하는 궁녀를 가까이하려는 것이었다. ○王,獵于西郊,國師僧,獻書曰,殿下換甲之年,宜小心修德,不可荒于遊畋,王曰,非敢好獵,欲逐虎也,其實,憚妬悍,因獵而出,私諸嬖也。

 

 

올해 4.15 108회 태양절

 

 

제26권 공민왕 1(恭愍王一) 임진 원년(1352) (윤삼월) ○ 삼사우사 홍언박(洪彦博)과 밀직부사 이성서(李成瑞)를 원 나라에 보내어 성절일(聖節日)을 하례하였다.

 

제26권 공민왕 1(恭愍王一) 계사 2년(1353) ○ 5월에 ○ 밀직사 이야선첩목아(李也先帖木兒), 응양군 상호군 안우(安祐)를 원 나라에 보내어 방물을 바치고 황후 생일에 예물을 바쳤다. 황후 생일 하례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고려시대가 되면 왕을 중심으로 본 것이기는 하지만, 10세기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생일이 자리잡기 시작했음을 본다. 그 전 시대에도 있었을 것으로 보는데, 아다시피 칠대실록이 불타버리는 바람에 그 전대 사전은 참말로 알기 어렵게 되어 있다.

 

 

태양절

 

 

덧붙여 나는 중국 사례로 보건대, 8세기 중반 이후에는 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의식이 신라에도 침투했으리라 보는데, 관련 기록이 워낙 없어 종잡기조차 힘들다. 

 

앞에 든 사례 중 충렬왕의 그것은 환갑이 기념되었다는 점에서 대서특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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