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 시조 김수로 파트너 허황옥許黃玉을 둘러싼 출자出自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는 유일한 증언이 《삼국유사》 기이편에서 절록切錄한 고려 문종시대 문헌인 《가락국기》가 거론한 아유타국阿踰陀國이 전부였으니, 이는 후대 허왕혹 출신지를 인도로 거론하는 바탕이 된다.
그 근거가 된 대목을 보면 김수로와 첫날을 보내는 날 그 배필이 된 허황옥이 수로한테 하는 다음 말이 그것이니,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로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黃玉이라 하며 나이는 16살입니다.[妾是阿踰陁國公主也, 姓許名黄玉, 年二八矣.]
유의할 점은 그가 아유타국을 거론했지, 그것이 인도인지 어딘지는 어디에서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아유타국을 인도에 있는 나라라고 해석한 것은 후대 역사학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아유타국설, 더 정확히는 인도 아유타국설은 현재의 문제로 치환해, 한국과 인도 관계를 말할 적에 그 깊은 연원을 말해주는 일화로 주로 정치권에서 거론하기 시작했으니, 단순히 그것을 넘어 한-인도 우호를 다지는 가교 역할로 활용되기 시작했으니, 아유타국 허황옥 도래설을 주제로 삼는 이벤트 역시 적지 않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경남을 기반으로 삼는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런 이벤트는 더욱 빈번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역사학계에서는 대다수가 인도설을 부정하면서 그것이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허황옥 아유타국 설이 다른 데서는 어찌 보이는가? 이를 짐작할 만한 근거가 전연 없었다. 《가락국기》가 무엇을 토대로 저리 주장했는지를 알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신라사람 김대문이 썼다는 《화랑세기》가 출현하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에서 바로 허황옥이 등장하는 까닭이다. 《삼국유사》 引 《가락국기》 원전이라 할 만한 언급들이 이 《화랑세기》에는 집중으로 보이니, 특히 금관가야 김수록 적통 후손인 유신공庾信公 전에는 그것을 집약한 흔적이 그의 열전 말미 세계 조에 보인다.
그에 이르기를
금관가야는 수로 청예왕한테서 시작하니, 그가 황룡국 여자 황혹을 취했다.[金官加耶始于首露靑裔王 娶黃龍國女黃玉]
고 한 대목이 그것이다. 이에서 《화랑세기》는 후대 《가락국기》가 말한 아유타국 대신 황룡국을 거론한다. 덧붙여 황혹이 허씨라는 언급도 없다. 이 시대 신라 가야에는 후대 완연한 성씨 개념이 없었다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
아무튼 이에서는 황옥이 황룡국 출신이라 했다.
그렇다면 황룡국은 어디인가? 그것을 짐작할 곳이 딱 한 군데인데 졸본부여 초기 역사에서 아마도 고구려 이웃 어딘가에 있었을 국가 이름으로 그것이 고개를 들이민다.
만약 이 황룡국이라면 황옥은 그에서 모종의 정치 상황을 이유로 남쪽으로 도피하다가 금관가야에 이른 셈이 된다. 이 문제는 또 다른 고민을 유발하니 그에 미루기로 한다.
www.youtube.com/watch?v=OJ7Senfxq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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