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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우체통을 닮은 능산리 사리감舍利龕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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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립부여박물관을 가서 보니 저 배치가 조금 바뀌어 이른바 백제금동대향로는 이 박물관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라 해서 상설전시실 가장 후미진 데 독립하고 고립한 안방을 차지한 데 견주어 저 사리감은 꼭 문지기처럼 그 전면에서 자리를 차지한다.

따라서 존재감은 말할 것도 없이 향로에 견주어 훨씬 미약해 그 모습을 보노라면 묘한 감정이 일기도 하니, 유물 역시 금칠을 해야 빛이 더 나는 법이며, 화강암 돌덩이는 제아무리 잘 갈아 만든다 해도 금덩이 견주어서는 빛이 덜 날 수밖에 없다 하겠다. 

사비시대 백제유산을 대표하는 저 둘은 이전에는 저런 식으로 서로 마주보게, 그리고 그 간극에는 현재와 같은 그 어떠한 가림 장치가 없이 마치 세트를 방불하게끔 배치했지만, 그것이 출토한 지점이 같은 부여 능산리 절터이며, 같은 사비백제시대 유물이라 하지만, 실상 그 자체가 각각에 대해 세트는 아니다. 간단히 말해 별도로 제작 유통된 물품이며 무엇보다 기능에서 서로 연결되는 지점은 없다. 

 

백제금동대향로 받침



1996년 그 휘황찬란함을 가만 둘 수 없다 해서 국보로 지정된 대향로가 1993년 12월 12일 능산리 절터 구역 중에서도 서쪽 회랑回廊 터라고 명명한 곳 중에서도 조사단이 공방지1이라고 명명한 지점 땅속에 출토된 데 견주어, 저 사리감은 금당터 남쪽 중앙 마당을 차지하는 목탑이 있던 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향로가 말 그대로 무슨 신성한 의식에 향을 피우는 기물인 데 반해 저 사리감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공간인 것이다.

물론 향로가 그 기능으로 볼 적에, 또 사찰에서 발견된 점을 볼 적에 사찰에서 행한 모종의 의식에 사용했을 것이라 짐작은 할 수는 있지만, 따라서 그것이 진신사리를 봉안할 적에 그 의식용으로 사용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순전히 상상의 영역리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 휘황함에서 분명 이른바 저 창왕명 석조 사리감百濟昌王銘舍利龕이 향로를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족보의 확실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후자가 전자를 따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저 사리감은 저 명칭이 시사하듯이 백제 창왕昌王(위덕왕) 시대에 누가 시주해 만들었는지를 명확히 밝혀주지만, 향로는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내친 김에 저 문화재 지정 명칭도 이참에 새로 생각해야 하는데 창왕명 석조 사리감百濟昌王銘舍利龕이라는 말은 ‘창왕’이라는 말이 문구를 새긴 돌로 만든 사리감이라는 뜻이지만, 사리감이란 사리를 안치하기 위한 동굴 모양 구멍[龕]이라는 뜻이라, 이는 저 돌덩이 중에서도 구멍이 파진 저 지점만을 말하는 것이요 그 부분을 포함한 전체 돌덩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따라서 굳이 현재의 명칭을 살린다면 저 지정 명칭은 ‘백제 창왕명 석조 사리(안치)장치’ 정도가 되어야 한다. 왜? 사리를 안치하기 위한 돌로 만든 구조물인 까닭이지 어찌 저 돌덩이 중 구멍만을 따로 떼어내 문화재로 지정하거나 등록할 수 있단 말인가?  

 

창왕명 백제 사리감



능산리 절터 중 목탑터 심초석 자리서 수습한 저 사리장치는 말 그대로 사리장엄舍利莊嚴을 안치하기 위한 외양 혹은 치장물임에도 아쉽게도 그 사리장엄은 어느 때인지 알 수는 없는 시점에 몽땅 도굴당하고 없다. 앙코 빠진 찐빵인 셈이다. 따라서 본래의 사리장엄 구성물이 어떠했는지 우리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우리는 그 사리장엄 외양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추측할 수는 있으니, 저 사리감 모양 때문이다. 

사리장치 전체는 높이 74cm에 너비 50cm 우체통 모양이라, 그 전면 중앙을 파서 마련한 사리감은 높이 45cm에 너비와 깊이 각각 약 25cm다. 높이에 견주어 절반이지만 깊이 역시 상당함을 보아 주기 바란다. 그 내부를 좀 더 자세히 보면 바윗돌을 두 단으로 파내려갔음을 본다. 구조로 보아 안쪽 단에 사리장엄을 안치하고 바깥쪽 턱이 진 단에다가 그것을 봉쇄하기 위한 작은 문을 설치했음이 분명하다.

 

우체통을 닮은 무령왕 부부 관



전체 모양을 볼 적에, 그리고 그곳에다 판 감실龕室 또한 위가 둥근 궁륭형 혹은 아치형인 데 반해 그 아래는 방형이다. 천상 우체통을 닮은 모습이다. 이 모습이 무엇을 말해줄까? 우리는 그것이 담았을지도 모르는 비밀을 찾아 여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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