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이전 지배층이 뿌리까지 뽑힌 때가 두 번이 있으니
첫째가 삼국통일기의 고구려, 백제의 영토이며
두 번째가 무신정변기다.
특히 무신정변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죽었고 멸문지화를 입은 문중이 무수하다.
멸문된 집안이 많았다는 것은 이 때 흥한 집안도 많았다는 이야기다.
두문동 72현 어쩌고해서 여말선초에 망한 집안이 많았던 것 같지만
실제로 유심히 보면 여말선초에 멸족된 집안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명문가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고
두문동 어쩌고는 그 사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시기에 수절해서 집안이 퇴락한 곳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여말선초보다는 오히려 세조의 쿠데타 때 멸족된 집안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에 반해
무신정변.
이 시기를 정말 집중적으로 파 볼 필요가 있는데,
고려건국시기까지 올라간다는 집안 중에서도
이 시기에 대부분의 종족이 살해당해서 그 중 일부만 살아남아 간신히 흘러 내려온 흔적이 있는 집안이 의외로 꽤 있다.
고려시대 전기에 시작하여 중엽까지 계보가 단일한 흐름으로만 내려온다던가 하는 집안은
무신정변기에 집안이 멸족의 위기에 몰렸을 가능성이 많았던 집안들이다.
다시 말해 고려전기 소위 문신 가문의 반열에 들었던 집안들 중에는
무신정변 중 집안이 멸족의 위기에 몰렸던 집안이 꽤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면,
김부식.
경주김씨라고 하지만 경주김씨 족보에는 김부식과 그 후손은 없다.
아예 김부식의 후손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말이다.
김부식 집안은 무신정변의 와중에 사실상 멸족당했다고 할 수 있다.
무신정변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 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당시 무신들이 얼마나 많은 문신들을 죽였는지 알 수 있겠다.
고려 후기와 조선시대의 소위 명문가들은
무신정변에 간신히 살아 남은 이들의 후손이거나
아니면 무신정변 때 새로 대두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세기까지 남았다는 마한의 독립성 (0) | 2023.12.10 |
---|---|
나이 대신 경력? (1) | 2023.12.10 |
일본의 성리학 (0) | 2023.12.09 |
한국사에서 당위성을 제거하기 (0) | 2023.12.08 |
60 이후의 생업은 이전의 연장이어야 할까 (0) | 2023.1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