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9월 10일, 조선총독부의 촉탁이자 고적조사위원을 겸하고 있던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 곡정제일, 1880-1959)는 경성부 아사히마치旭町 잇초메一丁目 143번지, 지금의 서울 중구 회현동 143번지(소월로 16)에 있던 집에 이삿짐을 옮겨놓는다.
그리고 이사했다는 사실을 관제엽서에 인쇄하여 지인들에게 보낸다. 그 중의 한 장이 최근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 엽서는 다른 것하고는 구별되는 사연이 있다. 바로 이 엽서를 받는 와카야마현의 야쓰이 간조谷井勘藏란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니고 야쓰이 세이이쓰 본인의 아버지라는 사실!
보통 생각하기에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족)에게 이사했다는 걸 알려야 한다면 손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아버님 전상서, 소자가 이번에...."이런 식으로 써서 부치거나, 전화로 "아이쿠 아버님, 기체후 일향만강하시었습니까? 제가 이번에...." 이렇게 알려드렸을 것 같은데, 이 야쓰이상은 그냥 다른 사람에게 부치는 것처럼 집에도 똑같이 부쳐버렸던 거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효자라고는 할 수 없는데,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런 데는 무심한 아들이었던 것 같다. 간조 어르신이 이걸 받아보았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야쓰이 자료를 많이 갖고 계신 정인성 선생님 말에 따르면 그는 아버지에게 돈 부쳐달라는 편지를 많이 썼다고 한다.
뭐 객지에서 공부하랴 뭐하랴 돈이 많이 들긴 했겠지만, 그래도 살갑게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내용을 보면 자기 할 말만 하고 무뚝뚝하기 그지없다던가.
전형적인 부자父子의 모습이라고 하면 지나치겠지만, 어쨌건 성격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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