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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문난問難 : 성리학의 입도방식

by 초야잠필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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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은 선생이 학생에게 강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리학에의 입문은 사서집주로도 충분하다. 

독학할 수도 있다. 

조선에서의 성리학이 중국인의 전파에 의해 이루어졌는가? 

성리학의 이해가 깊어지는 과정이 유학자들 사이의 논쟁을 통해 발전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성리학의 입문과 이해의 심화는 독학과 어려운 부분에 대한 문난으로 이루어진다. 

옆에서 아무리 가르쳐 봐야 이해의 정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사실 사서집주의 주자의 주석을 완전히 이해하면 책을 많이 볼 필요도 없다. 

그 안에 성리학의 모든 것이 있다. 

주자어류나 성리대전, 성학십도도 따로 볼 필요도 없다. 

어차피 사서집주의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주자가 남긴 필생의 저작은 사서집주라 할 수 있다. 그 안에 다 있다. 

대개 성리학의 경우 선생과 제자의 문답 형식의 기록이 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사서집주의 세주에도 문답형식의 문난 기록이 많다. 

그 문답에서 다루어진 부분이 바로 성리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다. 

이런 선생과 제자의 문난을 통해 성리학의 온전한 이해에 방해가 되는 부분이 돌파된다. 

따라서 사서집주의 세주도 중요하다. 그 안에 성리철학의 이해에 어려운 부분이 대개 적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철학사에도 있었던 유학자간 유명한 논쟁들도 모두 넓게 보아 이러한 문난의 흐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강항에게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일종의 문난을 한 것이다. 

강항의 기록을 보면 후지와라 세이카는 이미 성리학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을 테고 사서를 보다 보니 주석을 접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주자학에 이미 상당 부분 독학으로 입문한 상태였다고 봐야겠다. 

강항과의 대화를 통해서는 독학으로 구축한 성리철학 이해의 어려운 부분, 

바로 그 막힌 곳을 뚫은 것인데

질문과 응답을 통해 이 부분이 타개되자 후지와라 세이카는 승복을 벗고 일본 최초의 주자학자를 자임했다. 

17세기엔가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다녀와서 

숙종인지 누구인지 왕이 그에게 일본이 어떻더냐고 물었더니, 

걔들은 더이상 야만인이 아니라는 대답을 한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냐고 했더니 

성리철학을 문답했는데 

딱 나올 만한 질문이 나오더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 통신사 다녀온 양반의 입장에서는 

질문의 수준을 보니 어느 정도 성리학을 이해하고 있는지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리학이라는 게 이해에 혼란스럽고 쉽지 않은 부분이 대개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문난이 이루어지는 곳, 자주 헷갈리는 곳이 딱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강항을 만나 그 부분을 해결한 것이고, 

이것을 우리는 조선이 일본에게 성리학을 전해주었다고 이해한다. 

성리학을 전해주었다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그렇다. 

일본이 성리학을 강항 이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그렇다. 

조선의 경우 성리학의 도입과정에서 중국쪽과의 문난은 없었다. 

조선학자들끼리의 논쟁을 통해 성리철학에의 이해 수준을 높였는데, 

일본의 경우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이해하는 시기에 

문난이 조선유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 

그 부분이 이색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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