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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선성리학은 일본에 뭔가 전해준 것은 맞다. 
그리고 그것도 일본성리학의 본격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맞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뭘 전해줬는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게 문제다. 
조선은 일본에 성리학을 전해준 것이 아니다. 
성리학을 전해줬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이야긴가. 
임진왜란 전후한 시기는 이미 주회암이 사망한지 4백년 가까이 되는 시기로, 
주자의 주가 사서에 찍혀 돌아다니던 때였다. 
주자학을 보기 싫어도 사서를 구해 보면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는 시기였다는 말이다. 
그러니 일본 쪽에서는 조선이 주자학을 전해 준 것이 아니라는 말도 한다. 
그 이전부터 일본은 주자학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일본이야 받는 쪽 입장에서 우리가 학생이었습니다 이야기하는 것이 불쾌할 테니 
아는 것도 모르는 척 한다고 할 수 있다고 하자. 
문제는 우리다. 
내가 보기엔 조선성리학이 일본에 도대체 뭘 전해준 것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이 옳다. 
강항姜沆(1567~1618)은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1561~1619)에게 
도대체 뭘 전해준 걸까? 
성리학? 
그렇게 단순히 이해한다면 그것 정답이 도저히 아니다. 
조선에서 유학자들이 일본의 초기 성리학자들을 만날 때 
저쪽은 성리학에 대해서 일자무식 상태에서 조선 선비들을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조선선비들은 뭘 전해줬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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