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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문재인 대통령은 왜 부천 유한대학으로 갔는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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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어제(21일) 아침 에디터 주재 회의에서 정치부장이 그날 문재인 대통령 일정으로 유한대 졸업식 참석을 보고했다. 나 역시도 그랬거니와, 에디터 역시 이런 행보가 이례적이란 생각이 들었으니, 우선 육사해사공사, 그리고 경찰대 졸업식이 아닌 여타 대학 졸업식에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것 자체도 이상했고, 더구나 그 대상이 나로서는 생소하기만 한 유한대학이라는 전문대라는 사실도 그랬다. 


하지만 유한대학 창업주가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임을 알고는 이내 문통이 그곳을 가야 하는 이유를 파악했으니, 3.1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그 현창사업을 정부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독립운동가가 만든 교육 현장을 찾다보니 유일한과 유한대를 주목했다고 나는 본다. 이것이 갖는 여러 의미는 아래 우리 공장 기사를 참조하라. 


역대 두번째·18년만의 대통령 전문대 졸업식行…파격 & 도전(종합2보)


돌이켜 보면, 독립운동가 혹은 그 직접 유훈이 깃든 문화교육시설이 몇 군데 되지 아니한다. 저명한 유학자 출신 독립운동가 김창숙이 세운 성균관대가 있고, 또 다른 독립운동가 장도빈이 설립에 관여한 단국대학교가 있으며, 기업으로는 장도빈 아들 장치혁이 설립한 고려합섬(고합그룹 전신)과 더불어 유일한 박사가 세운 유한양행 정도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 정부가 표방하는 100주년 사업의 선전성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함으로써 극대화할 대학 졸업식장으로 단국대나 성균관대 정도가 있을 뿐이거니와, 하지만 이 경우 논란을 부를 우려도 없지 않아, 나는 현 정부 수뇌진이 부러 일반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유한대학이라는 경기 부천 소재 전문대학을 찾았다고 본다. 


유한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유일한 박사....참말로 묘한 인물이다. 

그는 미군 특수공작부대인 OSS 요원 출신이다. 이 기관이 훗날 CIA로 확대하거니와, 간단히 말해 그는 미국정부가 양성한 정보첩보기관의 에이전트였고, 그런 까닭에 그는 미국 정부의 간첩이자 스파이였다. 이런 인물로 김준엽과 장준하가 널리 알려졌거니와, 이를 고리로 삼아 장준하가 훗날 사상계를 창간하면서, 미국과의 연결점을 고리로 비즈니스를 잘 펼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국 스파이 유일한 박사는 종적이 어떠했던가? 


내 희미한 기억에 과거 어느 시절, 유일한 박사의 독립운동 사적을 추적 혹은 주목한 적이 있거니와, 그리하여 우리 공장 데이터베이스에서 '김태식 유일한 유한양행'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검색하니, 아래 기사가 검출되거니와, 꽤나 긴 이 기사를 보면 독립운동가로서의 유일한 행적이 간접 검출된다. 


이 무렵, 나는 유한양행에서 발행한 유일한 박사 일대기인지 뭔지를 본 적 있거니와, 그에서도 이 행적이 비교적 자세히 다뤄진 것으로 기억한다. 


유일한 박사



2002.05.01 09:00:02 송고 기사다. 


'납코작전' 기획자 OSS 아이플러 타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보기관인 전략정보국(OSS) 대령으로 한반도 침투.폭동계획인 '납코(NAPKO)작전'을 기획, 추진했던  칼 아이플러(Carl Eifler)가 지난달 8일 향년 96세를 일기로 미국에서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1일 국내에 전해졌다.


미군 정보기관 OSS 대령으로 2차대전 당시 한반도 침투계획을 수립 추진한 칼 아이플러(좌)가 1967년 현충일 때 해군제독 존 포드와 함께한 장면.



아이플러는 2차대전 이후 미 육군 정보전략가로 중앙정보국(CIA)의  전신격이자 2차대전 당시 미군 정보기관인 OSS를 움직인 중추적 인물로 생전에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미군사정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이다.


독일계 이민자의 아들인 아이플러는 1906년 6월 27일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나 15살에 나이를 속이고 입대, 필리핀에서 복무하다가 발각돼 귀가조치되기도 했다.


LA에서 경찰관으로 일하던 그는 멕시코 국경지대 세관에서 일하며 밀수범  체포 로 이름을 날렸고, 이 지역 일본인들의 동정을 파악해 보고한 것이 후일 장군이  된 스틸웰 대령의 눈에 띄어 1941년 중대장으로 군인이 되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 때 현장에서 살아남았고 이듬해 2월 미 육군부의 정찰참모이자 정보특공기관인 COI(Coordinator of Information) 실력자 굿펠로(Goodfellow)에게 발탁돼 이 기관에 몸담게 되면서 정보전략가로  본격  활동하기 시작한다. COI는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활동한 OSS 전신이었다.


나중에 대령으로까지 진급한 그는 유한양행 창립자인 유일한 박사를 비롯한  조선인들을 OSS 공작원으로 훈련시키는 한편 '납코계획'을 입안하고 수행한  인물이었음이 재미 사학자 방선주(70) 박사의 추적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방 박사가 지난 95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주최 학술행사인 '해방 50주년, 세계 속의 한국학'에서 발표한 '아이프러(아이플러) 기관과 재미 한인의 복국(復國)운동'이라는 논문은 아이플러가 기획한 '납코작전'을 파헤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미얀마와 중국, 인도 접경지역에 OSS 101지대 본부를 설립해  소수민족인 카친족 게릴라부대를 훈련시키고 일본에 대한 정보수집자를 양성했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대일항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던 중국 국민당 총수 장개석을 독살하려고도 했다.


재미사학자 방선주 박사



1943년말 본국으로 소환된 그는 OSS 국장 도노반과 굿펠로로부터 원자탄 개발을 막기 위해 독일의 핵전문가를 납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가 취소되고 맥아더의  필리핀 침공에 협조하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맥아더를 싫어한 아이플러는 일본 본토에 침입할 특수공작기관을 지휘하게 해달라고 요청해 허락을 얻었다.


방 교수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아이플러는 '납코 특공작전'이라는 한반도  침투공작을 벌이게 된다. 이를 위해 아이플러는 LA 건너편 산타 카탈리나 섬에 작전기지를 설립하고 요원들을 차출한다.


요원들 가운데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한 박사를 비롯해 장석윤과 차진주, 목사인 김성덕 등 15명 가량이 실명 확인되고 있다.


방 박사는 이들 조선인 출신 요원은 몇 개의 침투조로 구성돼 있었다고 밝혔다. 즉 유일한이 이끄는 'Einec'조와 이근성(李根成)이 주도하는 'Charc'조가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Mooro'조와 'Chamo'조로 편성돼 갔다.


방 박사에 따르면 납코계획은 적절한 시기에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인들을  선동해 혁명을 일으켜 만주의 관동군을 (만주와 조선에) 묶어 놓자는 실로 장대한  목표를 겨냥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작전은 아이플러가 스틸웰 장군과 함께 기획한 것이며 널리 알려진 광복군과 연합군이 합작한 '독수리작전'과는 별개로 1945년 8월에 실행될 예정이었으나  일본의 패전과 더불어 무산됐다.


2차대전 종결 뒤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자서전 2권을 내기도 했다.  <사진 있음>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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