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귀성길에서 돌아오면서, 이번 설 연휴 그냥 보내기도 조금은 찜찜해 일가족 영화 한 편 때리기로 하고 고른 것이 요즘 한창 흥행몰이 중인 《극한직업》이었다. 나로선 천만년만의 영화 관람이었으니, 명색이 문화부장이라는 놈이 매일 한 건 이상 요새 다루는 이 영화를 지나치기도 미안해서기도 했다.
용산CGV로 향하면서 우리 영화팀한테 카톡 메시지 하나 남겼다. "우리 일가족도 천만에 보탬하러 간다 ㅋㅋㅋㅋ" 라고 말이다. 물론 이 말은 한편으로는 천만 돌파 대비한 기사를 준비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ㅋㅋㅋㅋ. 아니나 다를까 그 의도를 파악한 영화팀에서 "낼 천만 돌파확실한데요, 오전 중에 관련 박스 기사 하나 준비하고 있습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기사 준비하라 한 적이 없는데..... 혹 빗자루 들자 마당 쓸라 한 격이 아닌가 해서 조금은 찜찜하다. 뭐 속으로들이야 그러겠지. "어련히 알아서 할까봐 뭘 이리 쪼으냐?" 아래 클릭하면 열리는 기사가 조금 전에 나간 우리 영화팀 이도연 기자 기사다.
가벼운 코미디 통했다…'극한직업' 오늘 천만 영화 등극
이 영화 흥행이 몰고온 최고 혜택은 수원왕갈비일 듯하다.
이번 연휴가 시작하면서, 나는 흥행추세로 보아 이 영화가 연휴기간 중에 천만을 돌파할 줄로 알았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 직전 주말 흥행추세를 보니, 하루 100만원을 동원하는 추세에다가, 다른 무엇보다 경쟁작이 전연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 개방 직후 '뺑반'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지만, 시사회를 다녀온 우리 영화기자들 하는 말이 한결같이 "경쟁이 안 된다"였다.
썩어도 준치라서인지, 혹은 꼴 냄새 잘 맡는 늙은 말이라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막연히 이 영화가 개봉한다 했을 적에 흥행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있었다. 해체 위기에 몰린 서울 마포경찰서인가? 그 마약반 형사 5인방이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위장 창업한 치킨집이 전국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벌어지기 시작한 일을 담았다는 이 영화는 내가 보는 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웃음을 소재로 하는 아주 가벼운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저 기사에서도 이도연 기사가 지적했듯이 "'국가부도의 날', '마약왕' 등 지난해부터 잇달아 나온 무게감 있는 한국영화에 지친 국내 관객들이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찾았다는 것이 영화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라는 말 나는 정곡을 찔렀다고 본다. 저 말은 실은 영화가 개봉하고서 흥행 돌풍을 예고할 적에 내가 영화팀에 한 말이기도 하다. 영화는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ㅋㅋㅋㅋ
시대를 바꾸면 이 영화는 어쩌면 안성기 박중훈 주연 경찰 코믹영화 《투캅스》의 새로운 버전이다. 투캅스가 경찰 부패 문제를 희화화했다면, 《극한직업》은 실적주의 경찰을 소재로 한다고 나는 본다.
자료를 찾아보니 《투캅스》 개봉일은 1993년 12월 28일. 연말이었거니와, 연합통신 기자로 막 첫 발을 디딘 첫해인 그때 만난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배꼽을 잡은 기억 생생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를 보면 나는 웃을까?
투캅스 안성기(왼)와 박중훈
내가 《극한직업》을 관람하면서 관람객 반응을 조금은 지켜보았다. 밤 10시에 시작하는 심야영화인 탓도 있겠지만, 흥행 돌풍이라는 말이 조금은 무색하게, 자리가 좀 많이 빈 모습이었거니와, 생각보다 많은 웃음이 나지는 않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동행한 이 일가족인데, 고3짜리 아들놈과 이제 갱년기에 접어든 마누라는 연신 깔깔 웃어대는 것이 아닌가?
영화관 있는 용산역에서 남영동 집까지 대략 걸으면 30분 거리라, 운동 좋아하는 아들놈 제안으로 속보 도보로 귀가했으니, 뒤쳐져 앞서 가는 마누라랑 아들놈 대화를 들으니, 연신 영화 이야기로 웃음꽃 피우느라 여념이 없다. 그 장면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키득키득 아주 죽어라 난리다. 그만큼 여흥이 컸다는 조짐이리라.
그러면서 아들놈이 날더러 동의를 구한다. "아부지도 재미 있지 않았느냐?"
요즘 이 친구가 대세다. 변수가 없다면 유혜진의 길을 걷지 않을까 한다.
나로선 "그래..뭐 그런대로"라고 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런 대답이 못내 마누라랑 아들놈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이내 돌아서서는 "야, 네 아빠는 말이다. 영화가 별로 재미 없었나봐" 하면서 키득키득 여전히 영화가 준 웃음꽃을 이어가는 대화로 다시 돌아가서는 좀비가 된 류승룡 흉내 내기도 하는가 하면, 뭐하는 놈이냐는 말에 "닭집아저씨"라는 대사를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배꼽을 잡는다.
늙어서일까? 아니면 감성 코드가 달라서일까? 혹 같은 《투캅스》인데 20여년 전엔 배꼽 잡은 내가 지금은 그 영화를 봐도 무덤덤한 이유와 혹 같거나 비슷하지는 않을까?
그나저나 젊은 세대에겐 《투캅스》 들먹거리는 나를 보곤 꼰대, 구닥다리라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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