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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문화트렌드> 바뀌는 기념논총 / 회갑논총 소멸, 퇴임논총으로 / 세 과시용에서 주제 중심으로

by taeshik.kim 202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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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당연하나 20년 전만 해도 새로운 흐름이었다. 

 

2006.02.27 06:24:00

<문화트렌드> 바뀌는 기념논총
회갑논총 소멸, 퇴임논총으로 
세 과시용에서 주제 중심으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최근 타계한 역사학자 이기백(李基白.1924-2004) 씨는 정년을 5년 앞둔 60세에 서강대를 퇴직하고는 한림대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10년을 더 채운 94년, 그의 은퇴와 고희(古希)를 기념한 논총집인 '이기백 선생 고희 기념 한국사학 논총'(일조각)이 나왔다. 이는 상·중·하의 총 3권으로 구성됐으며 분량이 2천809쪽에 이른다.

수록 논문은 공교롭게도 70편. 마치 70세 생일에 맞추어 70편을 채운 듯한 느낌이 들고, 나아가 공자가 거느린 제자의 숫자와 겹친다는 인상도 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당시 기념논총 실무자 중 한 명인 조범환 서강대박물관 연구교수는  "(논문을) 모으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당시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손병헌 교수 퇴임기념 논총봉정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성균관대 사학과 고고학 전담교수로 27년간 봉직하다 2008년 만 65세로 정년퇴직한 손병헌(孫秉憲) 교수의 퇴임기념논총 봉정식이 지난 15일 서울 강남 샹제리제호텔 뷔페에서 열렸다. 평생지기인 조유전 경기도박물관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2010.5.18 << 문화부 기사참조 >>

 

 

하지만 요즘은 이처럼 거창한 기념논총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년퇴직이나 특정 연령에 도달한 당사자와 그의 제자 및 가까운 주변인사들 모두가 종래와 같은 방식의 기념논총을 달가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당사자대로 논총을 만들어 달라 하기도 그렇고, 제자와 주변인사들도 기념논총 발행에  따른 금전적 갹출과 논문 집필 모두에 부담을 느낀다. 

기념논총은 논총 당사자와 가까운 사람들을 중심으로 일정 금액을 갹출해 만드는 것이 얼마 전까지의 전통이었다. 

그들 본인이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기념논총은 수록 논문 편수와 두께가 기념논총 당사자, 나아가 그를 중심으로 포진된 '학문 권력'의 크기를 가늠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이미 급격하게 붕괴됐다. 1997년 IMF 사태를 지나 2000년 무렵을 고비로 기념논총이 몰라보게 달라진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회갑논총의 소멸. 요즘 회갑논총 냈다가는 괜한 구설수에 오르는 시대가 되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바람에 60세를 '노인' 대접하지 않으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때문에 못내 회갑논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그 제자들이 나서서 "괜한 욕 얻어 먹게 되신다"고 말리는 촌극까지 빚어지기도 한다.

회갑논총이 소멸되면서 자연 기념논총은 무게 중심이 퇴임논총으로 가고 있다. 아직까지 정년퇴임 논총은 회갑논총과 같은 운명에 직면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면 퇴임논총은 어떤 모습으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있을까?

첫째, 주제 중심으로의 급속한 재편 현상이 발견된다. 2000년대 이전 논총이  '잡화점'이나 '백화점'식 나열이었다면, 최근의 기념논총은 주제를 아주 좁히고 있다.

둘째, 기념논총 당사자의 적극적인 논총 동참 현상도 발견된다. 

종래 기념논총은 헌정(獻呈)을 위한다는 목적 의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제자나 주변 사람들이 특정인을 위해 논총을 만들어 봉정(奉呈)하는 곳에 기념 당사자가 참여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요즘 기념논총은 이런 금기를 깨뜨리고 있다. 아예 기념을 받는  당사자가 전면에 나서 주동이 되어 논총을 엮기도 한다. 이 경우는 논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선생과 제자가 함께 엮은 책'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최근에 나온 '조선왕실의 미술문화'는 이런 경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에 속한다. 이 책은 한국미술사 전공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성미 교수의 정년퇴직을 기념한 것이다.

이 논문집은 단순한 논문 묶음집이 아니라 주제를 조선왕실 미술사로 엄격히 제한한 데다 그것도 제도사와 회화사, 건축사, 수장사(收藏史)로 나누어 철저한  분담 집필을 꾀했다. 논총 자체가 조선왕실 미술 개설사로 기획된 셈이다. 

집필진에는 퇴임 당사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논총봉정식에 슬기가 왔었구만. 난 기억도 없는데

 

기념논총의 이런 변모에는 학문업적 평가의 강화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힘들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는 기념논총에 수록된 글은 연구업적 평가 대상에서 제외한다.

그래서인지 기념논총이란 표지를 아예 지우고 논총 전체를 총괄하는 적절한  타이틀로 한 권 혹은 그 이상의 단행본을 엮어내는 추세도 강화되고 있다.  공저자의 경우에는 업적평가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 교수의 퇴임논총. 이 논총은 전 4권이나 되지만, 각각 ▲한국사회사연구 ▲한국사회사상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사회발전연구라는 타이틀을 달아 얼른 봐서는 이것이 기념논총인지조차 알기 힘들게 되어 있다. 적어도 서문은 읽어야 논총임을 알게 한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한 이성무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지난해 정년퇴임을 기념한 논총 '한국역사의 이해'(전 5권)도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해당 책이 기념논총이라는 표시는 책 표지에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띠지'로만 표시하기도 한다. 학교와 같은 곳에 업적용으로 제출할 때는 '띠지'를 떼어 버리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기념논총의 변화는 '자축형'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즉, 기념논총 당사자 본인이 특정한 사건을 기념해 그동안 자신이 쓴 글들을 묶어  단행본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제자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괜한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를 많이 단다. 

28일에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정년퇴직하는 정광 교수의 기념논총은 이런 모든 경향을 집결하고 있다. 

즉, 정 교수 본인이 문하생들과 함께 엮은 논총집 '역학서와 국사사 연구' 외에도, 그 자신이 그동안 쓴 글들을 정리한 세 가지  단행본(훈민정음의  사람들·역주 번역노걸대,노걸대언해·조선이두사전)을 동시 출간하기 때문이다.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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