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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미국버클리대학교 소장 《준천계첩濬川稧帖》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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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된 자료로 규장각에 《준천시사열무도濬川試射閱武圖》가, 리움에 《준천첩濬川帖》이, 부산박물관에 《어전준천제명첩御前濬川題名帖》이 있다.

2013년에 규장각에서 이 자료들을 참고로 모사본을 만들었다.


준천계첩濬川稧帖이라는 제목을 썼다. 
암것도 엄따
영조가 짓고 직접 쓴 글씨를 모사해서 넣은 것이다. 어제어필御製御筆 임금이 짓고 임금이 직접 썼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영조의 어제어필 모사한 것이다. 준천공흘濬川功訖 경등갈성 卿等竭誠 여문광무予聞光武 有志竟成 
청계천 좌우 밥상 앞에 앉은 사람들은 뭘까? 수문상水門上 친림관역親臨觀役, 수문 위에서 임금이 친히 임하시어 공사를 지켜봤다. 
영화당映花堂 친림사선親臨賜饍, 영화당에서 친히 임금께서 먹을 것을 내리시었다. 

 

모화관慕華館 친림시재親臨試才. 모화관에서 친히 임하시어 시험을 치르게 하셨다. 
연융대鍊戎臺는 탕춘대蕩春臺의 공식명칭이다. 탕춘蕩春이 봄날 쿵쾅거리며 논다는 나쁜 뜻이므로 연융대로 고쳤다. 오늘날 탕춘대성蕩春臺城도 공식명칭은 연융대성鍊戎臺城이다.
이름을 지운 세 사람은 우에서부터 김상로金尙魯 홍계희洪啓禧 구선복具善復이다. 이 준천소좌목濬川所座目은 목판에 새겨 인출한 것으로 규장각 소장 같은 책이 있는데 거기엔 이름이 제대로 남았다.
도청都廳
원역員役 후군총수後軍總數
별소감동別所監董 별소패장別所牌將 별소원역別訴員役
경도천거지개오재京都川渠之開奧在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발문은 홍봉한 글씨를 목판에 새겨 인출한 것이다.
이로 보면 경진년 4월 당시 홍봉한洪鳳漢은 행호조판서行戶曹判書였음을 본다. 본 직책이 무엇인지는 확인해야겠지만, 호조판서 자격으로 이 글을 썼다. 호조가 예산 인출 담당부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껍띠



***

조선 영조가 자신의 최고업적 중 하나로 내세운 청계천 준설 관련 요약 정리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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