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나라와 성씨제도가 아주 달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발생한것은 비교적 최근으로 이전에는 많이 다르지 않았다.
예를들어 일본에는 세이와 겐지와 간무 헤이지라는 종족이 있다.
이 성에서 일본의 많은 씨족들이 갈려나왔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 요리토모,
무로마치 막부를 연 아시카가 다카우지,
그리고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
모두 세이와 겐지의 후손임을 주장했다 (믿거나 말거나).
그 외에 전국시대 무장 씨족들도 세이와 겐지의 후손임을 자칭한 종족들이 부지기수이다.
심지어는 세이와 겐지의 후손이 아니면 막부를 열수 없다는 누가 이야기 했는지도 모르는 믿음까지 더하여.
너도 나도 세이와 겐지의 후손임을 자칭했지만, 그 진위 여부는 솔직히 알수 없다는 것이 맞겠다.
이 세이와 겐지와 다투어 천하를 양분했던 또 다른 씨족이 간무 헤이시-.
이 간무헤이지의 후손임을 자칭하는 씨쪽들도 부지기수이다.
이 세이와 겐지와 간무 헤이시의 시조격 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통일신라 시대의 사람이라,
간무 헤이시의 후손, 세이와 겐지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는
우리로 치면 대략 경순왕의 후손이라는 것과 별로 다름이 없다.
그리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세이와 겐지의 후손, 간무 헤이시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그런지 아닌지는 알길이 없다.
그렇게 주장하니 그렇게 받아들일 뿐-.
실제로 일본의 무가들의 계보란 것도 에도시대에 들어와야 정비되고 기록이 남기 시작한지라,
바다 건너 저쪽도 계보란 것이 믿거나 말거나 인것은 우리나 별로 다를 바 없다 하겠다.
오히려 우리와의 결정적 차이는
한국은 그렇게 전국에 흩어져 있는 씨족들이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하나의 후손으로 묶여가는 반면
(실제로 정말 같은 후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누구의 후손이라고만 주장할 뿐 개별 씨족들이 별개의 씨족으로 그대로 남았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는 한국보다 훨씬 많은 성이 남게 된 것이다.
왜 한국은 시간이 지나가며 하나의 본관인 성으로 묶여가는 가를 생각해 보면,
역시 그 과정에는 부계 족보가 17세기 이후 활발히 만들어졌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부계족보가 만들어지고 이에 많은 종족들이 너도 나도 후손임을 주장하며 합류하게 되자,
이렇게 여러 종족들이 모이기 시작한 그 족보는 권질이 엄청나게 팽창하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각 성의 산하 파들이 일본의 씨에 해당한다고도 볼수 있겠는데,
대략 사람 수나 연원을 보면 이 편이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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