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자 주말을 맞아 어떤 지역 박물관을 갔다. 한적했다. 관람객도 나뿐이었다.
요새는 동영상도 기록에 남겨야겠다 해서 자주 촬영하는 편이다. 물론 작품성과는 눈꼽만큼도 관계없다. 내 목소리 넣어 혼자 좋아라 룰루랄라 탱자탱자 나좋아라 내맘대로 촬영하는 딱 그 수준이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내가 나한테 설명해 가며 촬영 중인데 누군가 다가 와서는 의문의 눈초리를 보낸다.
"실례지만 선생님 뭐하시는지요? 유튜브 방송하시는지요?"
한 눈에 딱 봐도 어딘지 모르게 공무원틱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이쪽 계통 냄새가 나니 볼짝없이 학예연구사다.
"아 당신이 이곳 학예연구사요?" 했더니 그렇댄다.
한데 영 낌새가 사납다.
"저 영감 뭐하는 짓이야? 우리 박물관 욕하려는 거 아냐?" 뭐 이런 심리 아니었겠어?
"아, 마져 촬영 좀 끝내고 사무실로 가서 인사 드리리다."
못내 찜찜했다.
보통 이럴 때 내가 고개를 쳐들었으면
"아이고 김태식 기자님 아닙니까? 이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하고 나서야 하는데, 영 나를 모르는 눈치다.
약속한 거는 있고(안 오길 바랐겠지만) 해서 대강 관람 촬영 끝내고 사무실로 들어서서는 내가 누구요 하면서 명함을 쑥 내밀었더니
이 무슨 개수작인가? 하는 황당한 표정이다.
전연 나를 모르는 게 틀림없다. 내가 머쓱하다. 하이바 열심히 굴리며 이 난국을 어찌 타개해 나갈까 궁리하다가 역시 이럴 땐 정공법이 최고다.
"네 아버지 뭐하시냐?" 이게 최고다. 그래서 이 수법으로 나섰다.
"당신 어느 학교 무슨 과요?" 했더니 황당해 하면서도 어느 학교 무슨 학교랜다.
너 잘 걸렸다 하면서 대뜸 "어떤 교수?"라 했더니, 아니 어떻게 아시는지요? 금새 표정이 달라진다.
이제 주도권은 내가 쥐었다. 블라블라 쏼라쏼라 10분 만에 내가 이 업계에서 얼마나 악명 높은 옛날 기자인지를 각인하고서는 내가 필요한 자료 잔뜩 얻고서는 유유히 문을 나섰다.
#2
담당 기자도 아니요, 더구나 일선에서는 떠난지 한참인 내가 요새 내가 발굴현장, 특히 공식 현장 공개회 같은 자리에 갈 일 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그런 내가 어쩌다가 어떤 발굴현장을 가게 됐다.
내가 한창 현장에서 날뛰던 시절, 난 현장에서 그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유적을 맘대로 훼손하는 것도 아니요, 나름 철저히 지킬 것 지켜가면서 금줄 쳐 놓은 곳 맘대로 넘나들면서 사진 촬영 맘대로 해도 제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물론 속으로야 저 새끼 괜히 건드려 봐야 득될 거 하나도 없다는 그런 심리도 없지는 않았을 터.
한데 그 현장에서도 그렇게 내가 옛날 생각만 하고는 금줄을 머리 위로 넘기며 들어서려는 찰나, 현장을 지키던 조사원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제지한다.
"저 선생님, 여긴 들어가심 안 되셔요."
아이고 이 얼마나 가오 상하는가?
더 가오 상하는 일은 그 다음이었다.
노땅 조사원이 나를 막던 조사원들을 제지하면서 "아 이 분이 그 유명한 김태식 기자님이셔. 김태식 기자님 몰라?" 하는데, 이 조사원들 표정이 하나 같이 김태식이가 무슨 개뼉다귀야 하는 표정 아닌가?
그래 세상이 변했겠지.
이제 금줄도 안 넘어야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앞으로 현장을 좀 더 열심히 다니면서 분탕질을 해 보까? 하는 묘한 심리에 휘말리기도 한다.
조용히 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게 최고 미덕인데 어디 그렇게만 되는가?
어떤 때는 그렇지 않아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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