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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박물관이 살고자 한다면 고고학을 버려야 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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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보고 즐기는 곳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신왕실도자전



요즘 와서 내가 부쩍부쩍 자주하는 말이지만 박물관은 어뮤즈먼트 amusement 요 디즈니랜드지 교육기관이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주입할 것도 많은 마당에 박물관까지 가서 윽박당하고 훈육되어야 하는가?

박물관은 공부하는 데가 아니다. 흥겹게 뛰어노는 마당이지 훈장한테 회초리 맞는 데가 아니다. 내가 왜 거기 가서 배워야 한단 말인가?

함에도 여전히 박물관이라 하면 공부하는 곳이라는 강박이 작동한다. 외우고 쓰고 반복한다. 가서 봐라. 애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며 필기한다. 이게 박물관인가?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책가도전



그렇다면 누가 박물관을 이 따위로 개조했던가?

이르노니 그 제일 제이 제삼의 원흉이 고고학이다.

박물관에 고고학이 개입하는 순간 이 친구들은 관람객을 향해 위에서 꼬나보며 시종일관 야훼가 되어 무식한 너희는 내가, 우리가 가르치는 것을 받아적고 외우고 체득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박물관은 즐기는 데다.


박물관은 토기 공부하는 데가 아니다. 경기도박



고고학은 그 어뮤즈먼트를 완성하는 시녀로 전락해야 한다. 그들에게 파안대소를 주는 광대가 되어야 한다.

박물관에 고고학이 끼는 순간 박물관은 협박하는 기관이 된다.

내가 왜 구석기를 알아야 하며 내가 왜 빗살무늬토기를 알아야는가?

내가 원하는 건 그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지 그에 조종되는 것이 아니다.

고고학을 알아야 한다고 윽박하지 마라.

몰라도 된다.


동굴은 공부하는 데가 아니다. 단양 고수동굴



그런 점에서 철저히 놀기를 지향한 전곡선사박물관을 나는 찬동하며 아울러 근자 재개관한 경기도박물관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후자는 이른바 고고실을 없애버렸다. 출토복식실도 없애버렸다.

이제는 사람 꼬리뼈마냥 흔적만 남긴 고고학 코너엔 대신 비름박 토기실로 대체되어 내가 원삼국 백제토기를 몰라도 고고유물을 즐기게 했고 주검의 거무틱틱한 옷감은 치워버렸다.

나는 이런 발걸음들이 어뮤즈먼트로 박물관으로 가는 시금석으로 본다.

고고학이 빠져야 박물관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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