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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가 일어나기 몇 달 전, 중종은 조강朝講을 열었다. 그날 주제는 무너진 음악의 법도였다. <중종실록>을 보면 당시 우찬성 벼슬을 하던 이장곤(1474-?)이 이런 발언을 했다.
"신도 장악원 제조(掌樂院提調)로서 악기들을 보건대 과연 잘못된 데가 많았습니다. 일찍이 듣건대, 세종께서는 하늘이 낸 예성(睿聖)이셨고 또한 신하 박연(朴堧) 및 악사(樂師) 장영실(蔣英實)이 때에 맞추어 났었기 때문에, 성음(聖音)을 제작함이 헤아릴 수 없이 신묘하여 소리를 들어보면서 고치고 기구를 관찰하면서 바로잡아 조금도 틀리지 않고 그렇게 묘했었는데, 요사이는 기구가 틀린 것을 알지 못하게 되었으니, 정자지(鄭子芝) 같은 사람이 비록 음률(音律)을 아는 것 같지만 어찌 그 근본을 알겠습니까? 수직(守直)하는 관원이 조심하지 않고 또한 도둑맞자, 비록 해조(該曹)가 즉각 개수(改修)하였지만 어찌 능히 그 제작을 잘 고찰하여 그 제도에 맞게 하였겠습니까? 이러므로 성음이 한결같지 못함이 과연 장옥이 아뢴 말과 같은 것입니다."
1519년이면 장영실이 활동하던 때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뒤이다. 그때 장영실은 엉뚱하게도 '악사'로 기억되고 있었다.
*** (편집자주) ***
필자는 장영실을 악사로 기억한 대목이 뭔가 문제가 있지 않냐는 의문에서 이 글을 썼을 것이다.
이는 음미할 대목이다.
장영실은 기계 제작, 특히 청동 기술자였다. 그가 만든 기물엔 악기가 있었다.
자격루는 한편으로는 악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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