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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 8년인 1282년 4월, 개경에서 있었던 일이다.
개경 이첩(泥帖)의 불복장리(佛腹藏里)에 눈먼 아이가 있었는데, 그 부모는 모두 전염병으로 죽고 아이 혼자 흰 개 한 마리와 살았다.
아이가 개꼬리를 잡고 길에 나오면 사람들이 밥을 주었는데 개가 감히 먼저 핥지 않았고, 아이가 목이 마르다고 하면 개가 끌고 우물에 가서 물을 마시게 한 뒤 다시 끌고 돌아왔다.
아이가, “제가 부모를 잃은 뒤로 개에 의지해 삽니다.”고 말하니, 보는 사람들이 가련하게 여기고 의로운 개[義犬]라고 불렀다.
- <고려사> 권29, 세가 29, 충렬왕 8년 4월
아이가 살던 동네 이름이 '부처님 뱃속의 사리장엄'이라니 고려다운 작명센스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중요한 건 저 흰 강아지다. 아마도 역사상 최초의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고 해도 될 듯 싶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으니...
왕이 안남安南으로 사냥을 나갔을 때, 박의朴義가 고니 한 마리를 잡아 바치니 왕이 크게 기뻐하여 의복을 내려주었다. 충선왕이 세자로 있을 때 박의를 두고, “노상 사냥질로 우리 임금을 부추긴 자는 바로 이 늙은 개다.” 라고 욕하니 박의가 부끄러워 낯이 붉어졌다.
- <고려사> 권124, 열전37, 폐행嬖幸, 박의
같은 충렬왕대, 박의라는 인물의 열전이다.
이때는 왕의 측근인 '폐행'들이 정국에 참여하면서 나라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 일원이었던 박의를 어린 충선왕이 '늙은 개'라고 꾸짖은 것이다.
'개'가 고려시대에도 욕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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