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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주쯤 전이다.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서울대 모교수가 휴대폰에 찍힌다. 받자마자 대뜸,
"그거 어찌되가?"
묻는 게 아닌가? 짚히는 게 있었으나, 첫째, 질문 의도가 파악되지 않았고, 둘째, 그 질문이 그의 파멸을 바라는 쪽인지 지키려는 쪽인지도 파악되 않아
"무슨 말이요?"
라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배철현 말야. 배철현 표절 문제 어찌 되어가냐"
하는 게 아닌가? 이와 관련한 몇 마디 더 주고받은 인상은 나한테 전화한 이 사람은 그냥 궁금했거나, 연합뉴스가 속시원히 질러버려서 이 문제를 하루 빨리 끝장내 줬음 하는 눈치였다.
"그거 어찌되가?"
묻는 게 아닌가? 짚히는 게 있었으나, 첫째, 질문 의도가 파악되지 않았고, 둘째, 그 질문이 그의 파멸을 바라는 쪽인지 지키려는 쪽인지도 파악되 않아
"무슨 말이요?"
라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배철현 말야. 배철현 표절 문제 어찌 되어가냐"
하는 게 아닌가? 이와 관련한 몇 마디 더 주고받은 인상은 나한테 전화한 이 사람은 그냥 궁금했거나, 연합뉴스가 속시원히 질러버려서 이 문제를 하루 빨리 끝장내 줬음 하는 눈치였다.
배철현
전화를 끊고는 생각했다. 아, 배철현 문제가 이미 서울대 내부에선 공론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시 그보다 앞선 어느날 내가 잘 아는 어떤 사람이 날 보자했다. 만났더니 배 교수가 나를 만나 자신의 표절의혹을 해명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만날 필요도 없고, 더구나 지금은 만날 시점도 아니며, 더 나아가 이 사안은 내가 관할하는 문화부가 취재하는 사안도 아닌 까닭에 그 말을 전한 분께는 이러이러하니 만날 수 없단 뜻을 전달해 달라 말씀드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교수는 이 사안을 취재 중인 우리 공장 탐사보도팀에도 전했지만, 같은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안다.
배철현 교수 표절의혹과 관련해 탐사보도팀이 지난 한달간 준비한 기사가 오늘 와장창 쏟아져 나갔다.
그렇다면 나는 어찌하여 이번 사태에 관련되게 되었던가?
배철현
두달전쯤이다. 어떤 종교연구자가 이성하 목사라는 분이 있고, 그 분이 주도하는 신학계, 특히 기독교계 표절 추방 운동 단체가 있으며, 이 분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다고 하면서, 거기 가입해 보라 하면서, "보시면 아주 재미난 일이 많다"고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그 자리서 곧바로 그 페이지로 들어갔다. 가서 살피니 이 단체가 조사하는 표절 백태가 차마 눈뜨고 못볼 정도로 광범위함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 종교 담당기자랑 학술담당 기자한테도 이런 곳이 있으니, 자네들도 주시해 봐라고 알려주기까지 했더랬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튀어 올랐다. 그 유명한 배철현 교수가 광범위한 표절을 저질렀다는 혐의와 그것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첨엔 내 눈을 의심했다. 설마 한두 군데겠지, 어쩌다 각주를 빼어먹었겠지 했더랬다.
'신학서적 표절반대'에 오른 배철현 교수 표절 의혹 부분. 캡쳐
한데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점점 더 심각해졌다. 어느 순간, 이 문제는 우리가 직접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초 이 문제는 내가 관할하는 문화부에서 다룰까도 생각 아니한 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난관이 적지 않았으니, 이 문제에 매달린다면 식음을 전폐하고 취재해야 할 사안이지만, 우리 문화부 인력 사정으로는 도저히 그걸 감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취재에 들어가면 온전히 학술담당 박상현 기자 몫이 될 터인데, 이 친구는 그 노동강도가 목불인견일 정도로 요새 내가, 그리고 회사가 너무 부려먹어서 도저히 여력이 나지 않았다. 문화재에다가 3.1운동 백주년이라 해서 그 특집을 옴팡 뒤집어 쓰고 낑낑대는 중이었다.
이런 취재를 위해 얼마전 우리 공장에 새로 만든 조직이 탐사보도팀이다. 거긴 시간에 덜 쫓기는데다, 특정 출입처가 없어 이런 기획 취재에는 제격이었다. 더구나 그 팀장 임화섭 기자는 국내 손꼽히는 사건 기자였고, 얼마 전까지 경찰기자 대빵인 시경캡이었다. 안성맞춤이었다.
그리하여 이 사안은 탐사보도팀 전담이 되었다. 이 일을 안게 되면서 이 팀이 고생하는 장면은 내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으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전력을 투입했던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아니라 임 팀장이 증언해야 할 일이지만, 그랬다는 것만 전하는 것으로 갈음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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