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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수렁에서 건져야 할 가야유산과 가야문화특별법의 역할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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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18년 2월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개최한 가야 문화권 조사 관련 법안 제정에 대한 공청회 발표문이다.  

이 공청회 소식은 이 날짜 연합뉴스 보도 <"가야문화권 특별법 필요" vs "특정역사 지원 형평성 어긋나">을 참조하라. 관련 도판은 피로도를 경감하고자, 지금 보완했음을 밝힌다. 발표 원본에는 어떠한 도판도 없다. 



남원 두락리 32호분



수렁에서 건져야 할 가야유산과 가야문화특별법의 역할 


                                                                 김태식 연합뉴스 기자 


1. 사적 지정을 앞둔 전북의 가야유산 


 지난 1월 22일, 문화재청은 보존정책과를 통해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사적 지정 예고’라는 제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의하면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유곡리(酉谷里)와 아영면 두락리(斗洛里) 일원에 소재하는 삼국시대 고분군은 “지리산의 한줄기인 연비산(鳶飛山)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완만한 언덕의 능선을 따라 성내마을 북쪽에 무리지어 있는 40여 기의 봉토분(封土墳)으로 이중에는 지름 20m가 넘는 대형 무덤 12기도 포함”한다. 

 역사고고학계는 몰라도 일반에는 전연 알려지지 않다시피 한 이 고분군은 어떤 점에서 과연 국가 지정문화재 일종으로 面 단위 부동산 문화재에 주로 적용하는 사적(史蹟)으로 탈바꿈을 앞두게 되었던가? 그에 대한 문화재청의 가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가야와 백제의 고분 축조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고, 현지세력은 물론, 백제와 가야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이 함께 나와 5~6세기 남원 운봉고원 지역의 고대 역사와 문화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가치가 높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그에 대한 부연설명을 보면 “지난 1989년과 2013년 이곳에서 두 차례의 발굴조사를 시행한 결과,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竪穴式石槨墓․구덩식 돌덧널무덤)와 일부 백제계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 돌방무덤)을 확인하”는 한편, “특히 32호분에서는 길이 7.3m의 대형 수혈식 석곽묘(竪穴式石槨墓)를 확인하였으며, 백제 왕릉급 무덤에서 나왔던 청동거울과 금동신발 조각 등 최고급 유물이 출토되어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밖에 210여 점의 철기류와 110여 점의 토기류 등 유물도 다수 나왔다”고 한다. 더불어 “판축(版築)기법(켜쌓기-인용자)을 사용한 봉토(封土) 조성, 주구(周溝) 조성, 나무 기둥(목주․木柱)을 이용한 석곽(石槨) 축조 등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무덤 축조 기술이 우수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주구(周溝)란 무덤 주변을 빙 둘러가며 판 구덩이 혹은 도랑 일종으로, 주로 무덤에서는 배수 시설과 봉분 축조에 필요한 흙 채취 과정에서 생겨난 시설이다. 각종 고고학 전문용어가 난무하거니와, 간단히 말해 이 고분군은 가야와 백제 전통을 공휴하면서, 그 문화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무덤 축조 기술이 뛰어난 유산(heritage)라는 의미다. 

 이번과 같은 문화재 지정 예고는 문화재청에서는 으레 있는 일이며, 그런 점에서 유별난 관심을 유발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번 고분군 사적 지정예고를 허심하게 보아 넘길 수는 없다. 왜 그러한가? 그에 대한 문화재청의 의미 부여는 다음과 같다. 


  “또한, 호남지역에서 가야유적으로는 첫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사례로,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와 정비의 마중물인 동시에, 앞으로 영남지역에 비해 저조했던 호남지역 가야유적에 대한 학술조사‧연구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보통 문화재 지정 절차를 보면, 사적 지정이 예고된 해당문화재는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다음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 지정여부가 결판난다. 보통은 그대로 통과하는 것이 관례지만, 드물게도 각계 이해관계(주로 부동산이 대표하는 사유권재산 침해논란이 대표적이다)가 첨예하게 부닥친다거나, 해당 유적 혹은 유물에 대한 가치판단에 오류가 드러나거나 할 때는 지정 예고 자체가 취소되기도 한다.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이 그럴 처지에 몰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본다. 이를 추친한 남원시와 전북도에서 이런 의견 수렴절차를 대략 마무리한 상태에서 지정 신청을 한 까닭이다. 

 한데 이번 지정예고를 보면 의외의 사실이 드러난다. “호남지역에서 가야유적으로는 첫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사례”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문화재청의 평가다. 전라북도는 남원과 장수를 중심으로 가야 혹은 그 전통이 짙은 고총(高塚)고분과 쇠 제품을 만들던 공장인 각종 야철지(冶鐵址), 그리고 가야유산인가 하는 논란이 없지는 않으나 최근 들어서는 봉수대(烽燧臺) 유적이 각지에서 확인됐다. 물론 이들 유산이 과연 가야만의 유산인가, 아니면 백제 영향이 아주 짙은 ‘가야계’ 혹은 ‘가야․백제 혼합형’ 유산인가 하는 논란은 없지 않으니, 이런 문화융합 특성은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그 정확한 국적(國籍)이 무엇이건, 이들이 삼국시대 운봉고원 일대의 고대문화상(像)을 증언하는 더없는 증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그 많은 유산 중 어느 것도 오늘 현재 전북지역에는 그들 중 국가지정 문화재가 전연 없다는 사실이 의아하기만 하다. 

 문화재 지정은 언뜻 단순한 행정절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당 유산이 지정문화재인가 아닌가, 지정문화재라도 지방지정문화재인가 중앙정부 지정문화재인가에 따라 적어도 그 보존관리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실로 왕청난 차이를 빚을 수밖에 없다. 이 고분군은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된 까닭에 그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은 있었다. 하지만, 그 사적지정을 추진한 남원시는 그 지정신청서에서 “고분군은 적절한 보존방안이 마련되지 못한 채, 경작 및 민묘(民墓) 조성 등으로 인한 훼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문화재에 대한 보호가 필요고 추후 지속적인 정밀조사가 필요하여 사적으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고 한다. 지자체 기념물이냐, 국가사적이냐는 그 보존관리활용에도 실로 막대한 차이를 빚기 마련이다. 남원시라고 이 고분군이 급격히 훼손되는 일을 방치하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그런 까닭에 이를 사적으로 승격하는 문제가 지역 현안 혹은 숙원 중 하나였다. 

 종래 문화재라고 하면 그것이 개발에 적이 된다 해서, 어찌하면 ‘해제’할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시대가 변해 그것을 이용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지방기념물의 보존관리비용 분담 비율이 광역자치체와 기초자치체 사이에 어떤 정도인지 당장 내가 기억에 없으나, 사적과 같은 국가지정 문화재는 그 부담금을 국가와 광역, 그리고 기초자치체가 각각 70대 15대 15로 낸다. 열악한 지방재정을 고려할 때 지자체 자체의 충분한 재원 확보가 난망한 상황에서 국가지정 문화재는 지방재정 분담을 훨씬 줄이는 까닭에 이제는 어찌하면 국가지정 문화재로 만들 것인가를 두고 지자체별 전쟁을 방불하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에 더불어 국가지정 문화재를 얼마만큼 갖추었느냐 하는 지표가 본격적인 지자체 착근 움직임과 맞물려 그 고장의 자긍심을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한 경향도 무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국가지정 문화재로 만들어 달라는 곳이 전국에 걸쳐 한두 곳이 아니다. 지금 나에게 정확한 통계수치가 없지만, 사적으로 지정해 달라 아우성치는 곳이 대략 300곳이 넘는다고 안다. 개중에서 남원이 우선 선택지로 정해진 것이다.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 해답의 일단은 저 문화재청 보도자료 한 구절, 다시 말해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와 정비의 마중물”이라는 표현에 단적으로 보인다. 국정과제에 가야사 조사․연구․정비가 포함되지 않았더라면, 남원 가야고분군 국가사적 지정은 하세월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표방한 가야사 연구․복원이 이제는 그것을 해야 한다는 추상을 넘어 현장에서 구상이라는 기관차로 옮겨 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로 나는 저 남원의 가야 혹은 가야계 고분군에 대한 사적 지정 추진을 들고자 한다. 아울러 이는 그것이 아니었으면 하세월이었을지도 모르는 가야 유산의 보존정비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나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이 사업을 우선은 긍정의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그것이 밑거름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학계에서 그간 그리도 학술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 숙원 중 하나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40필지 9만8천225㎡에 달하는 적지 않은 면적이 일약 사적으로 승격하는 사태로 귀결하는 일이 못내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 기회를 우리는 놓칠 수는 없다고 본다. 


가야문화권 지역발전을 위한 포럼



2. 논란의 불씨 ‘영호남 화합’이라는 말 


 탄핵 정국과 촛불혁명이 빚어낸 소용돌이에 치른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 말미에 가야사 얘기를 꺼냈다. 그는 “지금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과제를 정리하고 있는데, 지방 공약에 포함됐던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꼭 좀 포함시켜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이런 언급에 앞서 문 대통령은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국면에서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임종석 비서실장을 비롯한 회의 참석자들이 “아, 가야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인수위 구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 대안 기능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주문한 것이다. 

 왜 대통령 본인도 이런 제안이 뜬금없다 했을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니, 검찰 개혁이니,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 청문회니 해서 정국이 한창 소용돌이를 치는 와중에 가야사를 들고 나오기가 적절한 시점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에 담긴 다른 뜻은 없을까. 관련 보도를 보면 문 대통령은 가야사 연구와 복원이 영·호남 벽을 허물 수 있는 사업이며, 그런 까닭에 “가야사 연구 복원은 말하자면 영호남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꺼낸 다음 언급이 더 흥미를 돋운다. “가야가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경북까지의 역사로 생각하는데, 사실 섬진강과 광양만, 순천만, 심지어 남원 일대와 금강 상류 유역에도 유적들이 남아 있다.”

 이 말은 허심한 듯하지만, 최신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가야 영역권 분포 양상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가야 영역이 지금의 경남·북 외에도 호남 지역까지 미친다는 사실은 근래에야 드러났다. 전북 동부 지역에서 가야 흔적은 1982년, 전남대가 조사한 남원 월산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그 고분이 확인된 이래, 현재까지 남원 운봉고원과 금강 상류인 장수 진안고원 일대에 대가야 영향이 짙은 중대형 고분만 400기 정도나 확인된 상태다. 이 지역에서는 고분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제철 유적과 봉수대 유적도 활발히 확인되는 중이다. 

 전남 지역에서는 2005~2006년 순천대박물관이 조사한 순천 운평리 유적에서 대가야 고분이 발견되면서 광양만 일대 역시 한때 가야 문화권에 속했음이 드러났다. 이런 최신 고고학 발굴 정보를 토대로 하는 문 대통령의 언급은 아마도 그가 가야사 전공자의 도움, 혹은 ‘사주’를 받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준다. 내가 청와대 관계자 A에게 이번 발언이 왜 나왔는지를 직접 문의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 사업이 문 대통령의 오랜 국정구상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한데 이번 역사 프로젝트는 문 대통령이 영·호남 화합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만큼 어느 정도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다. 실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가야사 발언은 호남 출신 중용으로 살짝 소외됐다고 느끼는 영남 지역 지지자들에 대한 선물의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는 두고두고 학계를 중심으로 논란의 불씨가 된다. 특히 역사학계 일부에서는 왜 최고 권력자가 특정한 역사 연구를 주문하느냐, 학문은 학계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동시다발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국고대사 최대 학술조직인 한국고대사학회 회장인 연세대 교수 하일식은 조선일보와 6월 6일자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역사의 특정 시기나 분야 연구와 복원을 지시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면서 “대통령이 학계에 ‘특정 시기 연구에 집중하라’고 하는 것은 외국에도 예가 없을 것이다. 미국이 그러겠나, 유럽이 그러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렇지만 이런 항변은 이전 무수한 역사 프로젝트, 예컨대 독도 영유권 논리 개발이니 중국 동북공정 대항이니 하는 사업이 국가 혹은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한국사, 특히 고대사가 짙은 정치성을 띤다는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다. 실제 무수한 이 시대 역사연구자가 투쟁가가 되어, 동북공정을 분쇄하는 최전선에 나섰다. 

 가야사 관련 릴레이 특집을 마련한 조선일보는 그 이튿날에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임지현의 관련 시론을 실었다. 한데 제목이 벌써 ‘청와대 주인은 역사에서 손 떼라’다. 그는 문 대통령의 이번 지시가 영·호남에 걸친 가야라는 고대사 조망을 통해 통합의 물꼬를 트겠다는 선의(善意)라고 하지만, “권력이 역사 해석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들 외에도 역사학계 종사자 중 일부는 이와 흡사한 논조의 글을 언론 인터뷰나 기고문, 혹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매체 등을 통해 확산시키기도 했다.  

 사업 추진 방침과 관련한 역사학계의 이런 반대 움직임은 마침 그 무렵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더불어민주당 의원 도종환의 역사관 논쟁과 맞물려 이상하게 전개되기도 했다. 도종환은 국회가 여야 합의로 결성한 ‘동북아역사왜곡 대책 특별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하면서, 소위 위대한 한국 상고사를 주장하는 재야사학 그룹을 노골적으로 편들었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임지현의 시론만 봐도 후반부는 도종환의 이런 역사관을 비판하는 데 대폭 할애했다. 그는 도 후보자가 하버드대가 추진한 고대 한국프로젝트나 국내 역사학계가 시도한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폐지하는 데 ‘맹활약’했다고 비난한다. 물론 도종환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역사관에 역사학계가 우려를 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야사 연구·복원 논란이 도종환 역사관 논란과 맞물릴 사안인지도 고민을 자아낸다. 어쩌면 두 사안은 별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역사학계는 이미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가야사 프로젝트가 실패작이었다는 사실도 일정 부분 그 계승일 수밖에 없는 이번 사업을 반대하는 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앞선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하일식은 “많은 연구자는 김대중 정부 때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가야사를 복원한다고 국가 예산을 엄청나게 많이 쓴 것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또 이런 얘기가 나오니 적절하지 못하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예산이 정해지면 실제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은 10%도 안 되고 대부분 토목공사나 이벤트로 쓰일 것이다. 이미 그런 비슷한 일을 많이 봐왔다. 물론 지자체는 쌍수 들고 환영할 것이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가야사 프로젝트가 토목 위주였고, 그렇기에 실패했다는 것이며, 대통령에 의한 이번 가야사 프로젝트 지시 또한 그 전철을 밟을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학계라 해서 반응이 한결같을 수는 없다. 가야사 전공자들 반응이 썩 다르다. 이렇게 가야사가 뜨겁게 각광받은 적이 있던가. 아마도 가야사에 쏟아진 관심은 임나일본부설 문제가 일본에서 처음 불거진 이래 처음일 것이다. 다른 시대 전공자들에 견주어 그 숫자가 유난히 적은 가야사 전공자들이 푸대접받은 것만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들은 언제나 신라 백제 혹은 고구려사 전공자들이 때마다 언론 등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곤 했다. 그만큼 가야사는 외진 길이었다. 이런 그들이 모처럼 주인공으로 설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국내 대표적 가야사 전공자 중 한 명이자 현직 문화재위원인 인제대 교수 이영식은 문 대통령의 이번 사업 지시를 “가야사 연구와 홍보가 부족한 점을 선언적으로 말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번 지시와 관련한 역사학계 일부의 비판적인 시각에도 동조하기 힘들다고 했다. “대통령이 가야사를 어떤 방향으로 잡아 연구하라고 한 것도 아니지 않으냐”며 “이 사업이 지나친 토목공사 위주로 흐르는 일은 경계해야겠지만, 삼국에 견주어 매몰된 가야사를 제대로 복권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야에 대한 푸대접 증거 중 하나로 중학교 교과서엔 1쪽 반, 고교 교과서엔 5줄만 언급된다는 사실을 든다. 나 역시 이런 이영식 생각과 궤를 같이하며, 그런 까닭에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이다.  


가야사 관련 국제학술회의


 나아가 ‘범(汎)역사학계’와 다른 축을 형성하는 고고학계에선 이렇다 할 움직임이 감지되지는 않는다. 고고학계로서는 대통령 지시에 의한 가야사 연구 복원 사업이 고고학 활성화에 일정 부문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야사를 증언하는 문헌 기록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새로운 돌파구는 고고학에 기댈 수밖에 없기에 표정관리 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해당 지자체들은 이제는 숙원을 풀 기회가 왔다면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야사 본고장으로 간주되거나, 가야 관련 유적이 밀집한 지방자치단체는 말할 것도 없이 대통령의 이번 사업 지시를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김해시장 허성곤은 심지어 이번 지시가 “가야권역 지자체 전부에 내린 축복”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금관가야 본고장인 김해는 김대중 정부 시절 소위 1단계 가야사 프로젝트를 통해 적지 않은 혜택을 받았다. 그럼에도 신라나 백제문화권 연구·복원에 역대 정권이 쏟은 사업 규모에 비해 단발성이었다는 점에서 언제나 가야는 서러웠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김해 쪽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1단계 가야 사업이 실패했다는 데도 동의하지 않는다. 총사업비 1297억 원이 김해에만 투입된 1단계 가야사 프로젝트는 가야문화 연구·유적 발굴 등 기초조사연구비에 73억 원, 사적 등지의 부지 매입에 547억 원, 대성동고분 정비 및 그 전시관 건립 등에 513억 원, 유적 연결로 조성 등 기반 조성비에 164억 원이 들었다. 김해시에서는 “다른 지역 복원사업보다 연구 및 발굴비 비중이 높았으며, 또 이 사업이 아니었으면 문화재보호구역 매입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실패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가야 문화권 중심축을 이루는 경남이 역시 빠르게 대응했다. 국가지정 가야유적 42곳 중 29곳이 몰린 경남은 도 차원에서 그 후속 조치로 김해 지역 금관가야와 함안 지역 아라가야, 고성 지역 소가야를 중심으로 사업 계획안 마련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어떤 곳보다 전북은 이번 대통령 지시를 환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김해를 비롯한 경남이야 가야 본고장으로 일찍 알려진 까닭에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관련 유산 정비가 이뤄졌지만, 80년대 이후에야 가야사의 다른 본고장으로 떠오른 전북은 사정이 전연 딴판이었다. 앞서 봤듯이 그 어떤 곳도 가야 관련 유산은 국가사적 한 곳이 없는 실정이었으니, 이번 지시를 그야말로 감격으로 받아들였음은 두 말이 필요 없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11월에는 전북도는 국립군산대와 협력해 이 대학 부설 가야문화연구소를 정식 개소했다. 


3. 시큰둥한 전남, 마한으로 맞불


 문 대통령은 분명 이 사업을 꺼내면서 그것이 영호남 화합에 기여하리라 기대했다. 그와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을 고려할 때, 이 역사사업은 영남보다는 호남 쪽을 더 배려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는 충분하다. 그런 정치적 고려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호남 지역 중에서도 적어도 전북은 집권세력의 의도는 적중했다고 할 만하다. 한데 전남 지역 반응이 의외로 뜨악했다. 


김해시 가야사 2차 사업구상도


 이 사업을 지시할 때 대통령은 분명히 가야 옛 영역으로 순천까지 지목했다. 순천은 전남이다. 함에도 전남은 이를 반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전북과 달리 전남은 가야라고 내세울 만한 유산 혹은 흔적이 희박하기 짝이 없다는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  순천과 광양 쪽에서 가야 혹은 가야계 무덤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이걸로만 전남이 가야와의 연고를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전남은 역사 정체성의 뿌리로 언제나 마한을 내세운다. 이 마한론도 연구자에 따라 층위가 다양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지금의 전라남도 지역 대부분은 6세기 무렵까지만 해도 백제가 직접 지배를 하지 못했으며, 마한이라는 왕국이 건재했다는 것이다. 그런 마한이니 가야 역시 일부 지역에서 영향을 미쳤을지언정 전남 지역에 땅을 디딜 여지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마한론은 내가 기억하기에 약관 26세에 전남대에 임용되어 한동안 이 지역 고고학 연구를 주도한 서울대 명예교수 최몽룡이 앞장서 주창하기 시작하고, 그가 떠난 뒤에 전남대에 정착한 임영진이 강력한 마한 옹호론자다. 

 이런 뜨악한 반응이 마침내 마한 프로젝트로 수면 위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남도가 마한 역사 프로젝트를 공표한 것이다. 이는 누가 봐도 가야를 앞세운 중앙정부에 대한 반기다. 쉽게 말하면 “그래 너희는 가야 해라, 우린 마한한다” 이런 대립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나는 본다. 

 마한 프로젝트는 지난 1월 3일 모습을 드러냈다. 전남도가 공개한 이 사업계획에 의하면, 도는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 실체 규명과 개발을 위해 올해부터 향후 10년 동안 6천911억 원을 들여 3단계, 15개 세부사업을 추진한다. 이 마한문화권 개발 계획을 위한 자문위원회도 미리 꾸렸다. 그에 필요한 재원은 국비 1천635억원, 도비 634억원, 시·군비 612억원, 민자 4천30억원으로 책정했다. 

 사업은 기반 조성기 10건, 확장기 3건, 성숙기 2건 등 단계별로 구분해 시행키로 했다고 한다. 당장 2018년도에는 도비 4억원을 들여 5개 사업을 추진한다. 영암 시종면 대형고분인 내동리 쌍무덤과 한일 고대사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함평 대동면 금산리 방대형 고분을 집중적으로 조사·발굴키로 했다. 그 발굴성과를 토대로 국가 지정 문화재로 승격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영산강 유역에 분포한 마한 유적 현황을 조사해 분포지도를 제작하고 중요 유적 조사를 위한 기초작업도 진행키로 했다. 이를 위해 3월에는 가칭 ‘영산강유역 마한 문화권 개발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오는 7월 출범하는 민선 7기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공약에도 반영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한 프로젝트는 여러 논란을 부를 소지가 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에 반대하면서 책정한 사업에 드는 막대한 비용 조달 문제를 우선 들 수 있다. 국비 1천635억원을 어찌 조달할지가 관건이다. 나아가 전남 지역이 삼한시대에는 마한 권역에 속한 것은 확실한 듯하지만, 그것이 6세기 무렵까지도 백제에 병합되지 않고 ‘마한’으로 남았는지는 의문투성이다.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마한 잔여세력이 여전히 마한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정치체로 발전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태부족이다.   

 고고학 발굴성과를 통해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할 때 지금의 전남 일대에 백제와는 별개 혹은 그와 밀접하면서도, 적어도 별개 독립성을 어느 정도 갖춘 정치체 혹은 정치체들이 한동안, 아마도 6세기 무렵까지도 존재했던 것만은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마한인가는 전연 다른 문제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는 그 정치체를 마한으로 규정하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역사왜곡 논란을 부른 여지가 많다. 


금관가야 토성




4. 법률로 가는 가야사 프로젝트 


 이런 논란 혹은 반대를 뒤로하면서, 갸아사 프로젝트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당선 확정과 더불어 곧바로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에서 인수위 역할을 대행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해 7월 19일 문 후보 대선 공약을 토대로 이 정부가 추진할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했다. 가야사 프로젝트는 애초 대선 공약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다름 아닌 문 대통령 본인 요청에 따라 새롭게 추가됐다. 이에서 가야사 프로젝트는 67번째 국정과제인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의 세부실천 과제 중 하나로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등’이라는 이름으로 담겼다.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위한 움직임도 활발해졌으니, 이들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국회의원들 활동이 자연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예컨대 금관가야 본고장인 경남 김해시갑을 지역구로 삼는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2017년 8월 25일, ‘가야역사문화권 연구․조사 및 정비와 지역발전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해, 이 법안이 같은 해 8월 28일 국회 국토위에 회부된 상태다. 이 법안은 가야 제국(諸國) 일원인 성산가야 터전인 경상북도 성주가 지역구인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이 2016년 6월 19일 발의했다가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된 ‘가야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흡수한 가운데 제3장 ‘연구·조사 및 발굴·복원’을 추가한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이 법안은 9월 19일 국토위 법안소위에 회부되었다. 

 이런 사태 전개에서 나로선 뜻밖이었던 점은 적어도 이때까지만 해도 이 사업을 추진할 주무부처가 국토부였다는 사실이다. 올해까지 꼭 20년째 기자로서는 주로 문화재에만 집중한 나로서는 이런 사업은 당연히 문화재청이 주무부처가 될 줄로 알았다. 가야사 프로젝트에 대한 대통령 지시가 나왔을 때도 당연히 문화재청이 이 사업을 주도할 줄로 알았다. 하지만 막상 그것이 전개되는 상황은 시종 국토부가 주도하는 형국이었다. 가야사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특별법 발의의원이 국토위 소속이라는 점도 그것을 반증한다고 본다. 기자가 오랜 기간 특정한 분야를 전담하다 보면, 내가 의식하건 아니했건, 그 분야를 전담하는 기관 논리에 함몰하기 십상이니, 나 또한 그에서 자유롭지 않다. 

 문화재청은 그것을 지탱하는 근간 법률이 문화재보호법이다. 이 보호법이 국토부가 대표하는 소위 국토 개발부처에서는 어떤 취급을 받는지 대강은 안다. 그것은 마치 문화재계에서 국토부 혹은 건설업체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하등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국토개발 관련 부처나 기업체들 눈에는 문화재보호법이 눈엣가시라는 사실 너무나 잘 안다. 반면, 문화재가 바라보는 국토개발 역시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으며, 나 역시 그런 시각을 지닌 사람 중 한 명이다. 누구나 다 알 법한 이 얘기를 굳이 되풀이하는 까닭은 어느 정도 주도권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번 가야사 프로젝트에서 자칫 있을지도 모르는 충돌을 어떻게 완화하고 조절하느냐에 사업성과의 관건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두 부처를 비교하면, 장관급과 차관급 청이라는 단순 비교 말고도 예산과 조직 어느 것도 비교대상이 될 수는 없다. 굳이 그런 구체적인 수치들을 대비함으로써 어느 한 쪽의 비참함을 부각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가야사 프로젝트는 대통령 입 밖으로  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법률 제정으로 가는 과정까지는 국토부 주도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문화재청 역시 대통령 지시 직후 이를 위한 각계 의견 수렴과 자문위 개최 등을 통해 대비를 하기도 했지만, 소관 국회 상임위를 통한 별도 법안 제출 등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국토부가 문화재청에 견주어 제아무리 공룡 부처라 해도, 적어도 이 사업에서는 문화재청의 협조가 없을 수는 없다. 그 사업 대상 현장 상당 부분이 문화재청 관할인 까닭이다. 문화재청이 이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시점이 내가 알기로는 이 법안이 제출되면서부터였다고 안다. 이 특별법안을 두고 국토부와 문화재청은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공동소관으로 추진키로 합의하고, 이를 위해 우선 13개 조항은 합의했다. 다만 추진기획단 설치는 아직 합의하지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런 조율을 거쳐 이 법안은 국토위 법안소위(2017. 11. 28)를 거쳐 제354회 국회(정기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동년 11.30)에서 두 기관이 합의한 안을 국회법 제51조에 따라 위원회 대안으로 제안하기로 확정했다. 오늘 공청회 역시 그 일환으로 안다. 


5. 가야문화특별법의 목적과 그 문제점  


 오늘 이 자리에 나는 가야사 특별법을 찬성하는 쪽 발표자로 초청받았다. 그런 내가 하나 확실히 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나는 가야사를 연구하고 복원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처럼 이렇다 할 실질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야 관련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이를 조사 정비하며, 나아가 그것을 관광자원 등으로 활용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는 사실이며,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이 기회를 정말로 잘 살려야 한다고 본다. 이 당위성에는 하등 나 역시 이론이 있을 수 없으니 나는 찬성론자가 맞다. 더구나 오랜 기간 문화재 담당 기자로 종사하며, 이렇다 할 보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채 사라져가는 무수한 현장을 안쓰럽게 바라본 사람으로서는 대통령의 지시는 고맙기 짝이 없다.


가야사 연구복원의 암초?



 나아가 그 실천을 위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가야역사문화권 연구·조사 및 정비와 지역발전에 관한 특별법안(대안)’이 내세운 다음과 같은 제1조(목적) 역시 나로서는 흠잡을 데가 별로 없어 보인다. 


 “이 법은 우리나라 고대국가 형성 시기에 성립한 가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연구·조사하고 발굴·복원하여 그 역사적인 가치를 본격적으로 조명하고, 이를 토대로 가야역사문화권을 계획적으로 정비하여 국제적 광역관광명소로 발전시킴으로써 지역 간 연계·협력을 강화하고 지역경제활성화 등 지역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목적을 세분하면 크게 조사연구와 그 활용으로 대별한다. “가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연구·조사하고 발굴·복원하여 그 역사적인 가치를 본격적으로 조명”함이 전자라면, “이를 토대로 가야역사문화권을 계획적으로 정비하여 국제적 광역관광명소로 발전시킴으로써 지역 간 연계·협력을 강화하고 지역경제활성화 등 지역발전에 이바지함”은 그 활용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두 부분은 이를 추진할 중앙정부 부처로 본다면, 칼로 무를 베듯 할 수는 없겠지만 전자가 문화재청 고유업무라면, 후자는 국토부 혹은 넓게는 문화체육관광부까지 포함하는 영역이라 볼 수 있다. 해당 지자체는 두 부문 모두 걸친다. 

 하지만 그 大義에 내가 찬성한다 해서 그 목적 실현을 위해 이 법률안이 내세운 구체적인 사안들까지 내가 전폭적으로 찬성하거나, 지지를 보낼 수는 없다. 문제점이 도사리거나, 그럴 소지가 많은 대목이 적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동 법률안 제6조에서는 시ㆍ도지사가 요청한 ‘가야역사문화권’ 지정을 국토교통부 장관이 하도록 하면서, 이 과정에서 장관은 “문화재청장의 의견을 반영하여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한 후 제30조에 따른 가야역사문화권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제7조 및 8조에서는 가야문화권 발전기본계획안 설립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주되, 국책사업 등과 연관한 경우에는 국토부 장관이 직접 기본계획을 입안하되 역시 문화재청장 의견을 반영토록 한 대목을 들 수 있다. 이를 보면 가야역사문화권 지정이나 그 입안은 시․도지사와 국토부장관을 양대 주축으로 설정한 듯이 보이지만, 지나치게 중앙정부에 권한이 집중한 느낌이 짙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비단 이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이 법률안은 문화재청을 소위 말하는 ‘들러리’로 전락시키고 있다. 고고학 문화유산을 근간으로 하는 역사프로젝트에서 그 주무부처인 문화재청은 그 입안과 실행 그 어디에서도 주도적으로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국토부 장관에게 단순히 의견을 개진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고질적인 부처 이기주의와는 분명 다르다고 나는 본다. ‘가야역사문화권’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절대의 조건이 관련 문화유산이다. 찐빵에 비유하면 이들 유산은 앙꼬다. 이 유형의 문화유산 없이 이런 문화권 설정 자체가 있을 수가 없다. 한데도 이런 일을 위해 존재하는 주무부처를 주체에서 배제하고 추진하는 역사프로젝트는 앙꼬 없는 찐빵만 양산할 수밖에 없다. 가야역사문화를 배태한 고도에 ‘가야대로’라는 도로를 닦고, ‘가야호텔’이라는 숙박시설을 들어서게 하며, ‘가야랜드’라는 레고랜드를 세운다고 해서 그것이 곧 가야문화권일 수는 없다. 

 제10조에서 가야역사문화권 지정을 위한 타당성 조사권을 문화재청장을 배제한 가운데 국토부장관과 시․도지사에게 주면서, 이를 위한 타당성 조사 및 기초조사에서는 문화재청장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규정한 것도 비슷한 문제를 유발할 소지가 크다. 

 이처럼 여러 군데서 등장하는 문화재청장의 의견을 듣는다거나 반영한다는 말이 어떤 구속력을 지니는지 나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의견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된다. 의견을 듣는다는 것이 모름지기 그 의견을 모두 반영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영도 전적인 반영인지 일부 반영인지 알 수가 없다. 의견 청취라든가 의견 반영이라는 절차가 단순한 요식 행위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손질이 필요하다. 

 이 법률안은 나중에 문화재청이 뛰어들어 절충하는 과정에서 초래된 현상으로 판단되지만, 곳곳에서 기존 법률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새삼 규정한 듯한 대목도 적지 않다. 예컨대 제10조에서는 가야문화권 지정을 위한 기초조사의 세부절차라든가 내용 등에 필요한 사항은 문화재보호법을 따라야 한다고 한 대목이라든가, 제11조에서 시장·군수·구청장이 가야의 역사 연구와 문화유산의 발굴·복원 및 계획적 정비 등을 위해 매장문화재보호및조사에관한법률을 따라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을 문화재청장과 협의하여 발굴한다고 했지만, 이 역시 필요 없는 규정이다. 제12조에서 말한 발굴한 매장문화재 중 역사적·예술적 또는 문화적 가치가 큰 문화재는 문화재청장 지시를 따라 보존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 또한 옥상옥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계획 실현을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가야역사문화권 지정과 기본계획 수립 및 정비사업에 관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가야역사문화권발전위원회’를 둔다고 했지만(제30조), 이 위원회는 여러 모로 문화재위원회와 상충할 소지가 많고, 설혹 상충하지 않는다 해도 자칫 같은 사안을 두고 두 위원회가 같이 심사하는 일이 벌어질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는 규제 완화라는 행정 움직임을 배반하는 일일 수 있다. 

 위원회 운영과 관련해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하되, 관계 중앙행정기관 장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되는 10명 이상 30명 이하 위원으로 구성토록 했으니, 분과위원회와 전문위원을 둘 수 있도록 한 점은 여러 모로 현행 문화재위원회를 모델로 한 듯한 인상이 짙게 한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위원회가 출범하더라도 문화재위원회가 고유 업무를 방기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이를 통해 견제가 가능하다고 자신하지만, 예상과 실행은 언제나 다른 법이라 충돌 혹은 이중규제를 막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고 본다. 

 요컨대 작금 법률안은 곳곳에서 구멍이 숭숭 뚫렸는가 하면, 옥상옥 같은 구조도 엿보이며, 기존 기구 혹은 법률과 충돌할 소지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역사프로젝트가 가야가 남긴 역사문화유산을 자산으로 삼는 만큼, 그 어떤 경우에도 그 전담 부서인 문화재청이 결정과정이나 집행과정에서 방관자 혹은 의견 개진자로 소외․배제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가야문화특별법은 그것이 어떻게 제정․시행되건 시종하고 일관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훼손 멸실되어 가는 가야문화유산을 그 위험에서 건져내는데 우선 주력하면서,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을 보존 정비하고 교육 혹은 관광자원화하면서 지역 사회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토대를 닦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 合목적을 위한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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