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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백제 무령왕릉의 ‘등관대묘登冠大墓’ 재고 - 동시대 중국과의 사례 비교를 중심으로 -

by taeshik.kim 2024.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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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百濟 武寧王陵의 ‘登冠大墓’ 再考 - 동시대 中國과의 사례 비교를 중심으로 ->, 《Journal of China Studies》 제7집, 부산대학교 중국연구소, 2009.08. pp.1-45

초록

영어
The discovery and excavation of King Muryeong's tomb in 1971 has been great help to solve many questions or mysteries concerning the history of Baekje dynasty, but at the same time it has brought on many problems.

In that respect its discovery was not only a great blessing, especially to historians, but it remains to a huge agony to them.

One of the unsolved problems in relation to the tomb is ‘Big Tomb’(大墓).

The two epitaphs excavated in the tomb say the dead bodies of King Muryeong and his queen were shifted to the ‘Big Tomb’, and buried in it eventually.

Almost all of the historians interested in it maintain that the ‘Big Tomb’ indicate the present King Muryeong's tomb, which is located in the Songsan-ri tomb area, Gongju, the capital of Baekje during the reign of the king (reigning from 501 to 523 A.D.) Nobody has raised any question on that.

But much to their regret, the ‘Big Tomb’(大墓) is far away from such a understanding.

The expression of the ‘大墓’, literally meaning ‘Big Tomb’, makes appearances sometimes in the chinese textual documents of the same age with the period of King Muryeong, or near to it, and more importantly, in the majority of such cases ‘大墓’ does not mean ‘Big Tomb’, it means the area of tombs or the whole graveyard belonging to a certain clan or family.

In brief, the ‘大墓’ is not a tomb, but a grave area.

Therefor the ‘大墓’ is a collection of many tombs.

That means the ‘大墓’ is a collective noun.

So we now conclude that the dead bodies of King Muryeong and his queen were shifted to the graveyard of their clan.

It can be also great help to the social systems that sustained the dynasty of Baeckje.

Its royal familly and high-class clans were operating their family graveyard respectively. 





한국어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발견되고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에서는 ‘大墓’라는 글자가 두 군데서 확인됐다.

하나는 무령왕 誌石 銘文에서 ‘安厝登冠大墓’라는 구절로 보이며, 다른 하나는 ‘改塟還大墓’라는 문맥에서 발견되는 무령왕비 지석이다.

이 ‘大墓’를 지금까지는 모두가 지금의 무령왕으로 간주했다.

다시 말해, 嬪 기간이 끝나면서 이들 두 부부가 영원히 안식하는 공간으로서의 ‘정식 왕릉’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통설에는 의문점이 적지 않다.

다른 무엇보다 무령왕릉은 여타 무덤에 비해 축조 기술이 뛰어나고 규모가 큰 편에 속하기는 하지만, 굳이 ‘大墓’라고 대서특필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大墓’를 ‘종족 공동묘지’로 치환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실제 ‘大墓’는 무령왕 시대를 중심으로 그 전후에서 발견되는 用例를 검토할 때, 규모가 큰 특정한 무덤이 아니라 그런 무덤이 무리를 이룬 墓域임이 드러난다.

특히 동시대 중국에서는 적어도 지배계층에서는 부계 중심 특정 종족이 특정한 지역에다가 무덤을 조성하는 일은 적어도 東吳시대 이래 일반화한 풍습이었다.

이렇게 ‘大墓’를 종족 공동묘지로 이해할 때, ‘登冠大墓’라는 구절의 ‘登冠’ 또한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해명할 수 있다.

‘登冠’은 무령왕을 비롯한 당시 백제 최상층 夫餘氏의 종족 공동묘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

‘登冠’은 글자 그대로 이런 묘역이 자리잡은 陵山이 머리에 관을 얹은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유래한 명칭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송산리 고분군이 웅진시대 백제 왕족의 공동묘역임을 명확히 하는 한편, 여타 다른 지역에서 무리를 이룬 채 발견된 백제시대 다른 고분군 또한 특정 종족의 공동묘지였을 가능성에서 접근해야 함을 확인한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安厝登冠大墓’
 3. 柳宗元ㆍ韓愈시대의 ‘大墓’
 4. 武寧王시대의 ‘大墓’
 5. 墓地혹은 墓域으로서의 ‘墓’
 6. 결론
 Abstract

키워드
종족 공동묘지 King Muryeong Big Tomb(大墓) family burial ground Southern Dynasties 武寧王陵 大墓 柳宗元 南朝
저자 김태식 [ Kim, Tae-Shik | 연합통신 문화부 역사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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