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현종 시대, 특히 안록산 사사명 반란에 즈음해 자주 보이는 협비원례荔非元禮는
백제 유민 후손이라는 심증이 강하게 든다.
협비荔非가 복성일 텐데, 저런 성씨를 쓰는 동아시아 국가는 백제밖에 없다. 협씨荔氏는 백제 대성 8족 중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마도 백제 멸망 즈음해 그 일족 일부가 당으로 넘어가 그쪽에 정착하면서 저런 식으로 성씨를 바꾸었을 것으로 본다.
신구당서에는 그의 열전이 없지만, 그의 행적은 아래 사전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를 보면 안록산 사사명의 난이 낳은 투톱 스타 곽자의郭子儀와 이광필李光弼 중 협비원례는 이광필의 오른팔이었음을 본다.
https://zh.wikipedia.org/zh-tw/%E8%8D%94%E9%9D%9E%E5%85%83%E7%A6%AE
이를 정리한다.
협비원례)荔非元禮(?~762)는 당나라 장군으로 관직이 진서·북정행영절도사鎮西北庭行營節度使와 하중절도사河中節度使에 이르렀다.
비장裨將 겸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관직에 진출한 모습이 보인다. 지덕至德 3년(758)에 진서북정행영절도사鎮西北庭行營節度使 이사업李嗣業에 속해서 하내河內에 주둔했다.
같은 해 3월21일, 북정병마사北庭兵馬使 왕유량王惟良이 반란을 획책하다 이사업과 협비원례한테 피살됐다.
건원乾元 2년(759) 정월 28일, 이사업이 업성을 공격하면서 날아다니는 화살을 맞아 죽자 병마사兵馬使인 그가 그를 대신해 군을 지휘했다. 3월 25일, 숙종肅宗이 위위경衛尉卿 협비원례를 회주자사懷州刺史, 권진서·북정행영절도사權鎮西北庭行營節度使로 삼았다. 임시로 삼았다는 뜻이다.
사사명史思明이 동진董秦 등을 이끌고서 군대로 하양河陽을 공격해 무너뜨렸다. 밤이 깊어 동진이 휘하 500명을 이끌고 이광필李光弼한테 투항했다.
이광필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성 밖에 목책木柵을 설치하고 목책 밖에는 해자를 파니 그 깊이와 너비가 2장丈이었다.
10월 12일, 연군燕軍 대장 주지周摯가 전력으로 공격해 오니 이광필이 협비원례한테 명령해서 정병을 이끌고 성 바깥의 해해자에서 공격을 막았다. 이광필이 성 동쪽 귀퉁이 나무에다 작은 붉은 기 하나를 걸고는 사태를 관망했다.
이광필이 연군이 핍박해 옴을 보고는 사람을 보내 협비원례한테 묻기를 "너는 반란군이 해자를 가득 채우고서 목책을 열어 진군하려 함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으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하니,
협비원례가 말하기를 "공께서는 묵묵히 지키기만 할 것입니까 아니면 싸우고 싶으십니까" 하니, 이광필이 말하기를 "싸워야 한다" 라 하니,
협비원례가 말하기를 "만약 싸우고 싶은데 반군이 참호를 가득채우고 있다면 우리가 왜 그것을 막아야 합니까" 라 하니, 이광필이 말하기를 "자네 계획이 좋다. 내가 그건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힘써 싸우라"고 했다.
연군이 목책 문에 도착해 그것을 깨뜨리고자 공격해 오자 협비원례는 결사대를 이끌고 연군을 공격해 적군을 수백 보 후퇴시켰다.
협비원례는 반란군 진지가 굳세어 무너뜨리기는 힘들다 생각해서 군대를 이끌고 후퇴하고서는 그들이 방심하기를 기다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광필은 협비원례가 군사를 이끌로 퇴각해 오자 대노하며 사람을 보내어 협비원례를 불러다가 참수하고자 했다.
협비원례가 말하기를 "전투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왜 저를 부르십니까" 하고는 군사를 이끌고 목책 안으로 들었다. 연군燕軍이 감히 진격하지 못했다.
이윽고 협비원례가 군대를 이끌고서 북들 두드리며 함성을 지르면서 책문 앞으로 돌격을 개시하여 연군을 격파했다.
협비원례는 이 공로로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이 더해졌다.
상원上元 2년(761), 이광필이 낙양으로 진군했지만 군대가 패하자 협비원례는 의성義成으로 옮겨갔다.
나중에는 河中 府에서 하중절도사河中節度使를 지냈다.
보응寶應 원년(762) 2월 15일, 하중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니 이 와중에 이국정李國貞과 함께 해를 입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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