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44)
관작루에 올라[登鸛雀樓]
[당(唐)] 왕지환(王之渙) / 김영문 選譯評
태양은 산에 기대
모습 감추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드누나
가뭇한 천 리 끝을
다 살펴보려
또 다시 한 층을
더 올라가네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넓고 큰 안목으로 미래를 바라봐야 하지만, 인간의 안목은 얼마나 짧은가? 공자는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고 했다. 나는 우리 집 뒷산에만 올라도 천하가 드넓음을 느낀다. 옛 선비들은 높은 곳에 오르는 일을 학문에 비유했다. 한 발 한 발 더 높은 경지로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이 수양하고 공부하는 과정과 같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 눈앞의 평화 논의도 더 높고 넓은 안목으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 하리라. (2018.05.26.)
첫째 구와 둘째 구는 태양, 산, 황하, 바다 등 광대한 자연을 묘사했다. 이 두 구절을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면 첫째 구는 태양이 하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므로 수직 운동이고, 둘째 구는 황하가 대지 위를 출렁출렁 흘러가므로 수평 운동이다.
그런데 셋째 구와 넷째 구는 천 리 끝까지 조망하는 시선, 그리고 누각 위로 한 층 더 올라가려는 동작을 묘사했으므로 그것은 인간의 행위다.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셋째 구는 드넓은 천지를 바라보는 수평 운동이고, 넷째 구는 인간이 누각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수직 운동이다.
수직→수평의 자연 운동과 수평→수직의 인간 운동이 대등하게 배치되어, 이 시에는 광대한 자연을 주체적으로 인식하려는 인간의 씩씩한 기상이 잘 드러나 있다. 또 황하의 수평 운동은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운명적 흘러감이지만 가뭇한 천 리 끝까지 조망하려는 수평 운동은 인간의 의지가 작용하는 적극적 바라봄이다. 태양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수직 운동과 인간이 누각 계단을 통해 하늘로 오르는 수직 운동에도 이와 동일한 의도가 드러나 있다.
이 시는 태양, 산, 황하, 바다, 천 리, 높은 누각 등의 광대하고 웅장한 사물에 인간의 적극적 의지가 투영되어 있으므로 성당 기상(盛唐氣象)을 잘 보여주는 당나라 시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저 광대하고 웅장한 천지에 비해 인간은 결국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므로, 인간이 씩씩하게 천지에 맞서더라도 그 밑바닥에는 늘 헤어날 수 없는 비애가 깔리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성당 기상과 성당 비애는 동전의 양면일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천천히 음미해보면 이 시도 그렇다. 가뭇한 천 리 끝까지 다 살펴보려고 또 다시 한 층을 더 올라가지만 그 천 리 끝은 끝끝내 우리 눈에 다 조망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죽더라도 인간은 살아야 하고, 끝내 그 끝을 알 수 없더라도 공부는 그만 둘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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