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 사이에는 흔히 번역은 비전문가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원전은 우리가 읽을 수 있지만, 전문가들이 아닌 이들을 위해 번역본을 낸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필자의 경우만 국한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보지만,
우리처럼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고 영어를 배워 책도 읽고 논문도 쓰고 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지적 활동에서 모국어로 회귀하는 강한 반동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쉽게 말해서 젊은 시절에는 되건 안되건 원전을 원어로 직접 대면하려 했던 생각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렇다 할 무리가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정신 활동에 있어 모국어로 회귀하려는 생각이 매우 강해진다는 것을 느낀다는 말이다.
따라서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는데 있어서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모국어에 의존하는 경향이 점점 커지게 된다.
이건 김단장께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외국어 원전을 읽어 새기는 것은 젊었던 시절에는 쉽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그렇지 않아도 줄어든 에너지를 원전 새기는데 쓸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정신과 체력, 양면 모두 모국어에 대한 의존도가 보다 커지게 된다는 뜻이다.
젊었을 때는 원전을 읽고, 새기고, 정신적 활동을 통해 새로운 뭔가를 창조하는 작업이 쉽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원전을 읽고, 새기고... 그 어딘가에서 방전하게 되고
정신적 활동을 통해 창조하는 작업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잠들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젊은 시절과는 달리 머리를 구동하는 배터리의 잔량을 수시로 확인하며 작업해야 하는 노년기의 연구는,
본질적으로 자신이 가장 편하게 여기는 언어에 의존하면서, 인풋에 들어가는 전력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그렇게 갈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학계에서 많은 책을 번역본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비전공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얼마 안있으면 닥칠 연구자들 스스로의 노년기를 위한 준비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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