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에서 배우는 교훈, 우리가 ‘통일정’을 건립하는 까닭
독일 통일 25주년과 한국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독일 분단의 현장이면서 독일 통일의 현장이기도 한 이곳에 이 정자를 세운다. 주독한국문화원이 세운 이 정자는 한독 양국 우호협력의 상징이면서 한국 통일을 염원하는 기념물이 되리라.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이 정자를 ‘통일정’이라고 명명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 정자가 독일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랜드마크였으면 하는 염원도 품어본다.
여기 세운 정자는 한국의 조선시대 궁궐 건축 중에서도 정자(亭子) 문화를 대표하는 창덕궁이라는 궁궐의 상량정(上凉亭)이다. 이 정자는 실물 크기 그대로이며, 구조 역시 실물 그대로를 따랐다. 원래의 정자 모습을 충실히 구현하고자 이를 세우는 데 한국산 소나무를 썼다. 한국 통일을 희망하는 독일 유명인사들의 메시지를 적은 기와 또한 원래 정자의 문양을 그대로 따랐다. 우리가 이를 ‘통일정’이라고 이름 하는 까닭은 이 정자가 6각형이라는 점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6이라는 숫자는 화합의 상징이다. 화합은 곧 통일이다. ‘통일정’이라는 현판 글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예가 중 한 명인 정도준 씨가 썼고, 글자는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보유자인 김각한 명장이 새겼다.
이 정자의 실제 모델인 상량정은 조선왕조 5대 궁궐 중 하나인 창덕궁이라는 곳에 있다. 1392년 고려 왕조를 대체한 조선 왕조는 건국 2년 뒤인 1394년, 지금의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에 해당하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그곳에 경복궁을 새로 건설하여 정궁(正宮)으로 삼는다. 하지만 궁궐 하나로는 부족했던 까닭에 이후 여러 궁궐을 짓는다.
창덕궁은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선왕조가 건설한 궁전이다. 경복궁 동쪽 인접 지점에 위치한 창덕궁은 1405년 완공을 본다. 이후 창덕궁은 경복궁과 더불어 1910년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조선왕조의 핵심으로 기능한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 동쪽에 있다 해서 ‘동궐(東闕)’이라 일컫기도 한다.
창덕궁에는 조선왕조 제24대 왕인 헌종이 1847년에 왕비와 대왕대비가 거주하기 위한 공간으로 별도로 지은 낙선재(樂善齋)라 일컫는 공간이 있다. 낙선재는 애초에 왕실 여성을 위한 공간인 까닭에 왕궁 주인공인 왕과 그 신하들을 위한 다른 궁내 건축물이 남성적인 데 비해 여성 취향의 풍모가 짙다. 그런 까닭에 현재도 낙선재는 각종 꽃이 만발하는 봄철이면 장관을 연출한다.
상량정은 앞쪽 평지와 그 뒤편 얕은 언덕이 조화를 이룬 낙선재 구역 중에서 북쪽 뒤편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정자다. 동아시아 문화에서 정자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거주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주변 풍광을 감상하기 위한 관람대라든가, 각종 연회를 위해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상량정은 아무래도 관람대 기능이 강하다. 그래서 이곳에 올라보면 품격 있는 전통 한옥 궁전 건축물이 무리를 이룬 낙선재 전 구역을 한눈에 조망한다. 정자 이름인 ‘상량’은 글자 그대로는 ‘서늘한 곳에 오른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것이 위치하는 곳이 바람이 잘 드는 높은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전하는 조선시대 정자가 대부분 평면 모양이 사각, 혹은 팔각인 데 견주어 상량정은 그 형태가 육각형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궁궐 내 다른 건축물에 견주어 규모가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육각형이라는 독특한 면모와 그 위치 때문에 창덕궁 관람객들의 눈길을 단연 많이 끄는 건축물 중 한 곳이다. 구조를 보면 돌덩이를 긴 네모꼴로 다듬은 돌들을 평면 육각형 형태로 깔아서 건물 기초를 만든 다음, 그 위에다가 육각형으로 길쭉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기둥 6개를 세우고 그 위에다가 지붕을 기와로 얹은 목재 건축물을 올렸다. 서양의 건축물 개념으로 본다면 2층이라 할 수 있지만, 돌기둥들이 건축물을 받치는 1층은 여섯 방향으로 모두 뚫린 구조인 데다가 어떤 의식을 위해 사람을 수용하는 공간은 아니다. 주변 풍광 관람이나 연회를 위한 공간은 2층이다. 바닥에서 2층으로 오르기 위한 시설로 나무 계단을 설치했다.
당연히 내부 역시 평면 육각형인 2층은 각 면마다 창호를 낸 내부 공간과 그 바깥을 두른 난간 공간으로 구분된다. 내부와 외부에는 단청을 화려하게 함으로써 장엄미를 더한다. 2층 내부 천장에는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을 장식한 문양 소재로는 봉황이나 용, 박쥐가 있다. 상상의 동물들인 봉황이나 용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복을 불러오는 의미를 지녔다. 용은 서구 문화권에서는 대체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동물이지만, 동양에서는 상서로움을 가져다주는 존재다. 특이한 동물이 박쥐다.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요즘 한국인들 사이에서 박쥐는 기피하는 동물로 통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그것은 복과 다산(多産)을 가져오는 상서로운 새였다. 왕위를 이을 왕자를 많이 생산해야 하는 왕실 여인들이 특히 선호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지붕 역시 몸체와 마찬가지로 모양이 평면 육각형이다. 6개 지붕골은 45도 방향으로 위를 향해 비스듬히 올라가다가 마침내 중앙 꼭지점에서 모인다. 그래서 옆에서 지붕 전체 모양을 보면 마치 육각형 뿔을 닮은 모습이다. 이런 건축 양식은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건축물인 탑에서 흔하다. 상량정 전체 구조를 보아도 불교의 탑과 매우 흡사하다.
처마는 이중으로 마련했다. 지붕을 장식한 기와 역시 각종 문양을 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예컨대 처마 끝을 장식하는 기와인 와당(瓦當)을 보면, 거기에 새긴 문양이 거미라든가 봉황, 꽃 문양, 복을 의미하는 한자 ‘壽’자 등으로 다양하다. 이런 독특한 구조와 장식은 결국 상량정을 더욱 돋보이는 건축물로 만든다.
이 정자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것을 알려주는 확실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위치한 곳이라든가, 주변 지역 다른 궁궐 건축물들과 배치된 모습 등을 볼 때, 낙선재가 만들어지던 시점에 그 일부분으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짐작에 지나지 않는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포함한 조선시대 궁궐 각 건물의 명칭과 위치, 역사 등을 정리한 문헌인 《궁궐지(宮闕志)》라든가 경복궁과 창덕궁, 그리고 또 다른 조선시대 궁궐인 창경궁의 조선 말기 궁궐 건축배치를 보여주는 조선시대 말기 문헌인 《궁궐도형(宮闕圖形)》 등을 보면, 상량정은 조선시대에는 ‘평원루(平遠樓)’라는 이름으로 일컬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양이 육각형이라고 해서 육각형 건물을 뜻하는 ‘육우정(六隅亭)’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들 문헌은 19세기 어느 시점에 지금은 상량정이라 일컫는 정자가 창덕궁 낙선재 구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사실만을 알려줄 뿐, 그것을 언제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을 지킨다.
상량정이라는 이름은 훨씬 나중에 생긴 것이다. 아마도 조선왕조가 일본의 본격적인 식민지배에 들어가기 시작한 20세기 초반 이후에 ‘상량정’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듯하다. 궁궐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궁궐 자체가 이름을 바꾸기도 하며, 그것을 구성하는 일부분인 궁궐 건축물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도 이름을 바꾸듯이, 상량정 역시 간판을 바꿔 달기도 했던 것이다.
주독 한국문화원은 2012년 9월, 정자 건립과 관련한 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베를린시 당국과 설치 협의를 거쳐 작년 9월, 건립 승인을 받고는 지난 6월에 건립을 시작했다. 정자가 들어선 포츠담광장은 1989년 11월, 동독인들의 자유투쟁으로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주변에 둔 베를린 중심지역을 차지한다. 이런 역사적 공간에 우리는 ‘통일정’을 건립함으로써 분단을 극복한 독일의 역사에서 평화와 신뢰, 협력이라는 교훈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우리는 이런 메시지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한국의 통일에도 밑그림이 된다고 본다.
*** 이상 이 통일정 건립에 즈음한 현지 안내판 설명문으로 내가 썼다. 아래 첨부 기사는 당시 준공을 전하는 우리 공장 베를린발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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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6 04:11:48
베를린 통일정자 오픈…독일의 한국 랜드마크 기대(종합2보)
주독한국문화원 하루 10만유로 광고효과 추정…獨 '한반도 통일' 희망 축사
통독 25주년·광복 70주년 계기에 독일 분단·통일현장에 우호협력 상징물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독일 수도 베를린 시내 한복판인 포츠담광장(포츠다머플라츠)에 통일정자가 세워졌다.
통일의 염원을 담은 이 정자는 주독 한국문화원 자체 추정으로 하루 10만 유로(1억2천200만 원)의 광고효과를 가진 독일 내 한국 랜드마크이자 한독 양국 우호협력의 상징물로 기능할 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와 해외문화홍보원(원장 박영국)은 25일 오전(현지시간) 통일정자가 들어선 옛 베를린장벽 옆 포츠담광장 남단 현장에서 준공식을 열고 통일정으로 명명된 이 정자를 공식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한독의원친선협회 대표 등 양국 주요 협력틀의 중심축으로 역할하는 하르트무트 코쉬크 독일 연방하원의원은 축사에서 "포츠담광장은 분단시절 죽음의 장벽이 동·서독을 갈려놓았던 장소"라고 지적하고 통일정 입지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코쉬크 의원은 통독 25주년과 한국광복 70주년이 겹친 올해의 의미를 짚고나서 "이 정자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의 고통스런 역사가 이곳 포츠담광장에서 치유되고 독일과 전 유럽의 분단이 극복됐듯이 평화와 신뢰, 협력을 바탕으로 동북아에도 마침내 한국이 하나로 통일되는 그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쉬크 의원은 "한반도 통일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찾아올 수 있다"며 "1989년초만 해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독일통일이 찾아오리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근거를 들었다.
이리스 글라이케 신연방주(구동독 지역) 특임관 겸 경제에너지부 차관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통일정을 동서독 분단과 재통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포츠담광장에 건립할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완공을 축하했다.
글라이케 차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구상한 한반도 긴장완화 정책은 여러 면에서 과거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도입했던 정책(동방정책)을 연상하게 한다"면서 "브란트 전 총리의 정책은 동서독 통일에 본질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란 정열과 균형 잡힌 관찰력을 지니고 단단한 판자에 강하게, 조금씩 구멍을 뚫어가는 작업'이라는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려 "통독 경험은 내부적으론 정열과 균형 잡힌 판단력을 갖추고 여기에 외교적 여건이 더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며 "머지않은 미래에 한반도에도 모든 요소가 충족돼 통일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라며 독일은 언제나 변함없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국인 부인을 둔 디르크 힐버트 드레스덴 시장은 "드레스덴 한국인 관광객이 최근 들어 예년보다 40% 늘었다"고 호감을 표시한 뒤 "한국과 함께 독일 통일의 교훈을 나누고 싶다"면서 "앞으로 기회가 되면 드레스덴에도 한국정자가 건립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국 측에선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의원이 정의화 국회의장의 축사를 대독하면서 "이 정자가 올해 3월 드레스덴에 설치된 '한국광장'과 함께 코리아 랜드마크가 되고, 베를린 시민은 물론 베를린을 방문하는 세계인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수 주독대사는 "광복 70주년과 분단 70년의 현실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 포츠담광장의 통일정자는 독일의 통일을 한반도의 현실로 이어가자는 소망과 의지를 담고 있다"면서 "베를린 시민과 관광객들이 통일정에서 잠시 쉬면서 한국건축미를 만끽하고 분단된 한국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한반도 평화통일을 함께 기원해주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자가 건립된 포츠다머플라츠는 1989년 11월 동독인들의 자유투쟁으로 무너진 베를린장벽을 주변에 뒀던 베를린 중심지역으로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따라서 이번 통일정 옆에도 장벽 실물 3개가 배치돼 상징성이 배가됐다.
주독 한국문화원은 베를린 시내에서 견줄 수 있는 광고판 2곳의 면적당 평균 광고효과를 기초로 통일정이 하루 9만9천525유로의 광고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모두 4억 원가량의 사업비가 투여된 통일정은 국내산 소나무류를 자재로 쓰고 창덕궁 상량정을 실측한 원형을 모방했으며, 독일 유명인사들의 통일 희망 메시지를 담은 기와는 창덕궁 상량정에 있는 문양을 그대로 사용했다.
문화재청 실측 자료에 따르면 창덕궁 상량정 규모는 지붕 위에 얹는 절병통 상단선까지의 최고 높이 8m 28.1㎝와, 정육각형 모양의 바닥 한변 길이인 2m 14.5㎝로 표현된다.
또한 '통일정' 글씨는 서예가 정도준 씨가 썼고,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보유자인 김각한 명장이 그 글씨를 현판에 새겨넣었다.
앞서 주독 한국문화원은 2012년 9월 사업 구상에 들어가 베를린시와 설치 협의를 하고 작년 9월 승인 받은 뒤 올해 6월 화천군이 운영하는 화천한옥학교에 제작과 설치를 위탁했다.
화천한옥학교는 이후 베를린시 당국의 행정 절차에 맞춰 지난 8월 자재 반입을 개시하고 지난달부터 기초공사를 거쳐 기둥, 목공, 단청, 와공 등 순서별 건립 작업에 박차를 가해 공사를 완료했다.
이날 행사에는 축사를 한 이들을 비롯해 독일을 방문 중인 새누리당 홍일표, 강석호, 류지영, 박인숙 의원 등 양국 주요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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