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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봄꽃 만발한 고창읍성에서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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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란 무엇인가? 

죽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하는 그 무엇이다. 

사랑하는 이 누구인가?

그 美를 보고는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다. 


고창읍성이다. 벚꽃 만발하는 봄날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낮엔 황홀해서 아름답고, 밤엔 떠난 사람이 아려서 아픔을 더하는 곳이다. 



무미건조한 설명으로 돌아간다. 발길로 차버려도 좋으나 그래도 한 번쯤 눈길 한 번 주고는 읽어놔도 손해볼 건 없으니깐 말이다. 


고창읍성(高敞邑城)

사적 제145호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倭侵)에 대비하고자 당국에서 전라 도민을 동원해 만든 돌성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한다.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든 이 성은 1965년 4월 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됐다. 둘레 1,684m, 성벽 높이 4~6m, 성벽이 두른 내부 면적은 165,858㎡다. 


동쪽과 서쪽, 그리고 북쪽 세 곳에 내부로 통하는 문이 있다. 옹성(甕城) 3개소와 치성(雉城) 6개소, 그리고 성밖 해자(垓字)를 비롯해 성을 방비하는 전략 요충시설을 두루 갖추었다. 


조선시대 성안에는 동헌(東軒)과 객사(客舍) 등 22개 동에 이르는 관아(官衙) 건물이 있었지만, 공북루를 제외하고 병화(兵火) 등으로 소진(燒盡)된 것을 1976년 이래 복원해 오늘에 이른다. 윤달에는 돌을 머리에 이고 성벽을 세 번 돌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부녀자들의 답성(踏城) 풍속이 남아있다. 



Gochangeupseong

Historic Site No. 145


Also known as "Moyang Fortress", Gochang-eup Fortress was built in 1453, the first year of the reign of King Danjong of the Joseon Kingdom, by the people of Jeolla Province to defend against Japanese aggressions. Together with Ibamsan Fortress in the Naju military district, it was meant to serve as an advance base to defend the fertile Honam region. 


Designated as Historic Site No. 145 on April 1, 1965, the fortress measures 1,684 meters in circumference, four to six meters in height, and 165,597 square meters in area. Its tactical features include north, east, and west gates; three half moon-shaped protrusions, six parapets, and surrounding moats. Its 22 structures included a commander's headquarters and guesthouse, with two ponds and four fountains located inside. 


Most of these were consumed by fire during the war, the exceptions being the multi-storied Gongbuk-ru and the Gilyong cheon, or "fountain of good luck". The site as it exists today is the result of a restoration undertaken in 1976. 


Legend holds that women who walk around the fortress three times with a stone atop their head during a leap month will enjoy long life and be admitted to paradise after their death. It is a custom still observed by many women to thi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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