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313)
봄비 내린 후[春雨後]
[唐] 맹교(孟郊, 751~814) / 김영문 選譯評
어제 밤 잠깐 사이
내린 가랑비
하늘이 만물을
살리려는 뜻
무엇이 가장 먼저
알아차렸나
빈 뜰에 풀 새싹
다투어 돋네
昨夜一霎雨, 天意蘇群物. 何物最先知, 虛庭草爭出.
가수 정태춘은 “봄은 오고 지랄이야”라고 노래했다.(「섬진강 박 시인」) 청춘을 지나 중년에 접어든 사람의 시니컬한 반응이다. 세월이 중년으로 들어서서 노년을 향해 치달려 가면 어린 시절의 감성과 열정이 시들어 새봄도 데면데면한 느낌으로 맞기 쉽다. 게다가 먹고살기에 바빠 꽃놀이 할 마음이나 시간조차 나지 않는 경우엔 저절로 “봄은 오고 지랄이야”라는 욕지거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봄비가 오고 새싹이 돋는 게 내 목구멍 풀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시절에도 시인 이상화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고 읊었다. 우리 땅을 일제에 빼앗겨 식민지 백성이 되었더라도 만물이 소생하고 온갖 꽃이 만발하는 새봄까지 빼앗길 수 없다는 어감이다. 중년의 나이에 “봄은 오고 지랄”이더라도 매화 향기는 매년 그대로이며,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어김없이 새싹은 돋기 마련이다. 진정한 싸움꾼은 오히려 매화 향기에 심취하면서도 항전의 결심을 풀지 않으며, 새로 돋은 새싹에 눈길을 주면서도 부활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생이 팍팍하고 고통스럽더라도 봄조차 빼앗길 수는 없다. 봄비에 가장 먼저 소생하는 건 작년 가을에 말라버린 들풀이다. 들풀 새싹을 기뻐하는 작은 여유만으로도 새 삶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봄비를 그윽히 바라보면 내 메마른 심신에도 청춘의 활력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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