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315)
대림사 복사꽃[大林寺桃花]
[唐] 백거이(白居易, 772~846) / 김영문 選譯評
인간세상 사월이라
향기로운 꽃 다 졌는데
산속 절집 복사꽃
비로소 활짝 폈네
봄 떠난 후 찾지 못해
길이길이 아쉽더니
이곳 산사 속으로
돌아든 줄 몰랐다네
人間四月芳菲盡, 山寺桃花始盛開. 長恨春歸無覓處, 不知轉入此中來.
대림사는 중국 여산(廬山) 정상 근처에 있는 유명한 절이다. 백거이는 원화(元和) 12년(817년) 음력 4월에 친한 벗 17명과 함께 대림사를 유람했다. 때는 음력 4월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양력 5월에 해당한다. 세속 평지에는 짧은 봄날이 벌써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초여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뜻밖에도 높은 산 절집에 화사한 복사꽃이 활짝 펴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떠나간 첫사랑을 만난 듯 시인 백거이는 의외의 기쁨에 어쩔 줄 모른다. 하지만 그 기쁨은 가버린 봄에 대한 ‘긴 한탄(長恨)’과 복사꽃과의 ‘뜻밖의 만남(不知)’이란 시어로 매우 절제되어 있다. 세속에서 사라진 봄은 출가한 스님처럼 이 산속 절집으로 돌아들었다. 놀랍다. 복사꽃이 출가하다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을 쓴 여승’처럼 절집 복사꽃은 범접하기 어려운 피안 기슭에서 환한 빛을 발한다.
작년 초여름 지리산 중턱 칠불사에 들러 하룻밤 묵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이 시와 똑 같은 느낌을 받았다. 평지에는 모두 져버린 봄꽃이 아직도 그윽하게 절집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곳은 화엄의 세계였다. 유명한 선방(禪房)인 ‘아자방(亞字房)’은 수리 중이었지만 맑고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올 초여름에도 총총히 사라진 봄을 찾으러 깊은 산 절집에 들러볼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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