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312)
한식(寒食)
[唐] 심전기(沈佺期, 650?∼714?) 또는 이숭사(李崇嗣, ?~?) / 김영문 選譯評
봉화 축서사에서
드넓은 하늘 아래
화염 다 꺼져
온 대지에 연기도
모두 숨었네
그런데 어디서
불이 붙어서
나그네 마음을
태우고 있나
普天皆滅焰, 匝地盡藏煙. 不知何處火, 來就客心然.
봉화 축서사
한식(寒食)을 직역하면 ‘찬밥’이다. 이날 하루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다. 왜 불을 피우지 않을까? 중국 전설에 의하면 춘추시대 진(晉) 문공(文公)과 개자추(介子推)의 이야기가 배경에 깔려 있다.
진 문공 중이(重耳)는 부친 진 헌공(獻公)의 계비(繼妃) 여희(驪姬)에게 쫓겨나 19년 동안 천하를 방랑하며 온갖 고통을 겪었다. 한때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게 되자 진 문공의 충신 개자추가 허벅다리 살을 베어 내 국을 끓여서 허기를 면하게 해주었다.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보위에 오른 진 문공은 논공행상을 하는데 그때 생명의 은인 개자추를 빠뜨리고 말았다. 이에 개자추는 노모를 모시고 면산(綿山)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뒤늦게 자신의 배은망덕을 알게 된 진 문공은 면산으로 가서 개자추를 찾았지만 종적이 묘연했다. 진 문공은 개자추를 하산시키기 위해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개자추는 하산하는 대신 노모와 함께 나무 등걸을 끌어안고 불에 타 죽었다. 진 문공은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며 이날 하루 전국에 불을 피우지 말고 개자추를 추모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봉화 축서사
이 이야기는 『좌전』이나 『사기』 등 중국 초기 정사에는 기록되어 않고 전한(前漢) 환담(桓譚)의 『신론(新論)』에 처음 실린 후 『후한서』 『군국지(郡國志)』에 다시 전재되어 널리 알려졌다. 지금 학계에서는 개자추 관련 전설은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본다. 즉 초기 인류가 불로 음식을 해먹는 과정에서 해마다 묵은 불씨를 새 불씨로 바꿨는데, 그 과도기에 묵은 불씨를 쓰지 못하게 하고 새 불씨의 신성함을 기념하는 기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 기간이 줄어들어 하루를 기념하게 되었고 그것이 한식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이 무렵은 1년 사계절 중 날씨가 가장 건조하고 봄바람이 세게 부는 계절이므로 옛날부터 화재 방지 차원에서 불을 금지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우리 기억에도 생생한 2005년 양양 산불도 한식 무렵에 발생했으며, 이번 산불도 공교롭게 한식 이틀 전에 발생했다. 화마는 모든 걸 잿더미로 만들므로 철저한 주의와 예방이 필요하다.
봉화 축서사
이 시 모티브는 매우 단순하다. 한식에 전국 모든 불을 금지하더라도 마음 속 불은 끌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아이러니야말로 이 시가 발산하는 미감의 중심이다.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고, 양명학에서는 심즉리(心卽理)라고 했다. 마음의 작용이 만물을 인식하는 근원이란 뜻이다. 그것은 양지(良知)이며 양심(良心)이므로 외부의 누가 명령하더라도 통제할 수 없다.
한식 날 전국 모든 불이 꺼졌음에도 객심(客心) 즉 나그네 마음 속 불은 꺼지지 않는다. 객심에 붙은 불은 무슨 불인가? 고향을 애타게 그리는 마음일까? 불안한 앞길에 대한 초조함일까? 이성을 그리는 연모의 정일까? 모든 불꽃이 사라진 한식 날에도 나그네 마음 속 불씨는 끝없이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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