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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봉분封墳, 도굴을 부르는 표식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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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노용올 흉노무덤. 노용올Noyon uulyn bulsh을 흔히 국내에서는 노인울라Noin-Ula burial site라 한다. 

 

이런 흉노무덤은 깊이가 대략 10미터 안팎인데 예외없이 도굴됐다.

내가 연전에 현장을 둘러보니 얕은 봉분이 예외없이 있다. 나는 이 표식이 도굴을 불렀다고 본다. 나 여기 있으니 도굴하라는 안내판에 다름 아니다.

저런 무덤은 만들기도 지랄 같지만 도굴하기도 더 지랄 같다. 도굴하다 심심찮게 매몰사고 나서 죽었을 법한데 아직 그런 흔적 찾았다는 보고는 없다.

도굴이 가능했던 이유는 보물을 묻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보면 흉노를 뭉갠 오환이 흉노무덤을 다 팠다는데 이들이 도굴 주범 중 한 명이다. 물론 이후에도 간단없는 도굴이 있었다.

 

노용올 흉노무덤의 봉분. 언뜻 드러나지는 않으나, 자세히 살피면 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저런 데가 낮은 봉분이라 도굴을 부른다. 


도굴이 두려워 칭기스칸은 유언으로 아예 봉분 흔적조차 없애버리고 말발굽으로 짓밟아 버리게 한다. 위魏 무제武帝 조조 역시 이런 방식을 썼다가 근자에 그 무덤이 기적적으로 안양安陽에서 발견됐다.

남월왕南越王 문제文帝 무덤은 산을 파고 그냥 묻어버리고 표지를 없앴다.

같은 시대 중산왕中山王 유관劉寬 역시 산을 깎고 동굴을 만들어 무덤을 봉하고 흔적을 없앴다.

위만조선 권력자들도 이리 무덤을 썼다. 이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다. 평양 일대 전축분 아무리 파봐라.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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