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3.08 10:29:10 글이다.
<동중서와 「춘추번로」가 꿈꾼 중화주의>
05-20040402-004-00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있는 말이다. 자공이 묻기를 "사람은 죽은 뒤에도 감각이 있을까요?"라고 하니, 공자 왈 "음...죽어보면 안다"고 했다.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고, 이 세상 삶도 잘 모르는데 저쪽(죽음 뒤의 세계)을 어찌 알겠느냐고 제자들을 질타했다. 맹자 또한 천天·지地·인人 중에서도 人을 가장 앞세우고 天을 꼴찌로 돌렸다.
순자는 아예 天과 저승 세계에 대한 죽음을 선언한다. "기우제를 지내서 비가 오는 것은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가 오는 것이랑 마찬가지다"고 갈파한다.
한데 이들 선배를 우습게 만드는 '반역자'가 출현하니 한漢 건국 직후 어느 무렵에 태어나 무제武帝 때 많은 활약을 보이는 동중서董仲舒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하늘이 곧 사람이요 사람은 곧 하늘이다고 외쳤다. 물론 여기서 사람은 왕王이다. 그래서 제왕이 정치를 잘 하면 하늘도 복을 내리며 제왕이 어긋난 길을 가면 가뭄도 내리고 홍수를 일으키는 따위의 천재지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 혹은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라 하고, 하늘이 견책한다 해서 천견설天譴說이라고도 하는 철학인데 동중서가 《춘추번로春秋繁露》라는 저술에서 확립했다고 평가된다.
그 진위야 무엇이건 이 철학이야말로 무려 2천년 가량이나 전근대 동아시아 사상사를 지배하게 된다. 일식이 났다 해서, 남해안에 적조가 출현했다 해서 조선왕조의 군주들이 수감자를 모조리 석방하는 쇼를 벌인 까닭이 여기서 연유한다.
이에 동중서는 이후 유교가 국교화되게끔 하는데 제1등 공신으로 추앙되었다.
하지만 동양철학 전공인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는 《동중서 : 중화주의의 개막》이라는 책에서 동중서에 대해 이러한 자리매김을 부정한다.
그 가장 주된 근거로 그의 (유교 국교화를 위한) 구상이 무제에게 받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이 때문에 죽음에까지 내몰렸던 사정을 주목한다.
대신 약소 제후국 출신인 공자가 《춘추》를 통해 중화주의를 부활하려 했듯이 동중서는 팽창주의, 무력주의에 맞서 무武를 무력화하고 문文의 시대를 펼치는 한편 중화를 중심으로 하는 통일 이데올로기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에 《춘추번로》는 역사를 투쟁과 피로 점철된 타락으로 보지 않는 대신 생명을 소진한 문화가 다음 문화로 주도권을 이양하는 재활력의 과정으로 보았다. 여기에서 나온 주장이 하夏·은殷·주周 삼통설三統說이라고 한다.
나아가 《춘추번로》는 공자·순자 등에 의해 자연의 대상으로 전락한 천天을 중화질서를 보증하고 수호하는 인격신으로 부활케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춘추번로》가 동중서 저작이라는 주장을 부정한다. 그렇지만 《춘추》에서 천인상관을 읽어내려 했음이 분명한 동중서로 대표되는 한나라 초기 잡학雜學이 한데 녹아들어 있는 것으로 보고자 했다. 태학사 刊. 352쪽. 1만5천원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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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춘추번로》는 완역본이 나오지 아니했다. 이후 아래와 같은 완역이 선보였다.
허호구·윤재환·정동화 공역 《역주 춘추번로의증》,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277, | 소명출판 | 2016년 06월
신정근 역 《춘추 - 역사 해석학 : 동중서의 춘추번로》 | 태학사 | 2006년 02월
둘 다 번역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믿을 만한데, 전자는 의증이라는 말에서 보이듯이, 주석본까지 번역한 것이며, 후자는 신정근 박사 특유의 아집이 잘 드러나는 번역이 혹 껄끄로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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