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믹스 30봉지로 버텨"…광부 주치의 "수일 내 퇴원 가능"
2022-11-05 13:05
"초기 3일 커피믹스, 식사 대용으로…이후 떨어지는 물로 연명""생환 광부들, 병원 도착시 체온저하·온몸 근육통…회복 빨라""망막·각막 보호 위해 사흘간 서서히 시력회복…점심 죽 식사"
언뜻 그 모양새만 보면 삼풍백화점 붕괴현장 기적생환을 연상케 하는 이번 사고 매몰광부 두 분 생환을 두고 기적이라 부르거니와 이를 둘러싸고 나는 두어 가지가 새로운데
첫째 이 광산이 아연을 캐는 곳이요 둘째 그들을 살린 힘 중 하나가 봉다리커피 라는 점이 그것이다.
생환을 꼭 봉다리커피만으로 꼽을 순 없겠지만 그것이 저 생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부인할 수 없거니와 이번 일은 나날이 생존위기에 처한 믹스커피 앞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 본다.
저 커피는 아다시피 설탕과 프림을 동반하는 달달 커피라 블랙 일색으로 커피 취향이 이동하면서 그 소비는 눈에 띠게 줄어든 것으로 짐작되거니와 한때는 그 열렬한 소비자였던 나 역시 저 봉다리커피는 한달에 한두잔 정도 소비로 그친다.
다만 저 봉다리커피는 등산이나 육체노동을 동반하는 공사현장에서는 여전히 애용하는 것으로 알거니와 이건 저런 호된 일에서 그걸 마셔본 사람들은 잘 안다.
저 봉다리커피가 저런 자리서 맛이 나는 까닭은 당분 섭취욕에서 비롯한다.
이 역시 인용인 듯 하나 외우 이정우 선생 전언에 의하면 우리가 마시는 아메리카노 커피는 열량이 한 잔당 5kcal 미만인데, 봉다리 커피는 50~70kcal 라, 두 세 봉다리커피는 밥 한 공기 150kcal와 맞먹는다 한다.
이번 일을 보며 백해무익은 없음을 다시금 실감한다.
다음 아연이라 하면 내 세대엔 Zn이라는 원자기호와 30번이라는 주기율표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그 다양한 쓰임이야 달리 말이 필요없거니와 영양소로도 중요하다 배웠다.
그 광산이 봉화에 있음을 나는 비로소 이번에 알았다.
아연亞鉛은 그 명칭으로 보아 납鉛 종류로 인식했음을 본다. 그런 까닭에 납에 버금하는 금속이라 해서 저리 이름하지 않았겠는가?
이런 사태가 터지면 이른바 전문가라 해서 아연이 무엇이며 그것이 산출되는 지리 환경은 무엇이며 그 역사적 쓰임은 어떠하며 관련 유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무엇보다 고고학도들이 나설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광물 전문가가 한국고고학도에 있다는 말 난 들은 적이 없다. 헛공부를 했기 때문이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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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구석기 고고학은 전공하다가 한국과학사로 전향한 국립과학관 윤용현 과장(박사)은 저 아연 문제와 관련해 아래와 같은 논급을 했다.
한국과학기술사 전공이니, 다 알고있는 상식 적어본다.
보통 구리 합금기술의 처음은 구리에 주석합금인 청동이지만, 고려 말 우리나라에 구리에 아연합금인 황동의 사용이 이루어지며, 조선 숙종 때의 상평통보는 바로 구리에 아연 합금인 황동이다.
1천5백년 가까이 유기는 구리에 주석인 청동이었지만, 이 무렵부터 구리세 아연인 황동이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후기의 자물쇠는 대다수 황동이 많이 사용된다.
참고로 고문헌에 보이는 고대의 백동은 구리에 니켈이 아닌, 구리에 주석인데 주석의 함량이 30%넘으면 은색에 가깝게 됩니다..., 주석의 함량에 따라 색이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 하는 것이구요.. 물론 조선후기에는 니켈이 함금에 사용됩니다^^
오동은 구리에 금을 합금한뒤 어린아이의 오줌에 의한 화학변화로서, 말하자면 황성분에의해 까맣게 변하는 기법을 말한다.
금동은 구리바탕에 금수은아말감기법으로 금도금 된것을 말하는 것이구요. 청동, 백동, 적동, 오동, 황동, 금동..,오방색이 가능했다.
백동에 대해 좀더..
백동白洞은 구리에 니켈을 1.5∼45% 첨가한 합금을 말한다. 기계공학용어사전에는 구리 70%, 니켈 12%, 아연 18% 조성의 강인한 재질의 동합금으로 정의하고 있다. 니켈 10∼30%의 합금은 연성이 뛰어나고 가공성이나 열간熱間 단조성鍛造性이 좋으며 내식성도 우수하다. 니켈을 15% 함유하는 것은 백색이며 장식품으로 널리 사용된다. 구리와 니켈의 두 합금 원소는 원자량과 크기가 비슷하여 액체 상태는 물론이고 응고 상태에서도 단일한 조성으로 이루어진 고용체형固溶體型으로 존재한다.
현재 백동 합금에 사용하고 있는 니켈이 원소로 등록된 것이 1751년임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조선시대 말기로 추정된다. 백동이 가구나 담뱃대, 자물쇠, 장도 장식으로 쓰인 시기는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로 보고 있으며, 백동은 은(Ag)을 대신하는 공예품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백동의 사용은 기원전 중국에서 이루어졌으며, 우리나라 백동 관련 문헌으로 『삼국사기』에 방울을 백동으로 만든 기록이 있다. 『고려사』에는 장야서 공장인 적동장赤銅匠과 백동장白銅匠의 기록에서 백동을 별도로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선화봉사고려도경』에 거울, 물동이, 기름병 등을 백동으로 만들어 사용한 기록에서 백동제작 기술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전남 신안 출토 원나라 백동 술잔[白銅觚]을 볼 때 이러한 백동 유물이 고려시대에도 널리 통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 조선 전기의 세종대와 후기의 고종과 순종대에서 백동 관련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세종대에는 백동 관련 교역과 생산 등의 기록, 특히 백동 산출이 경상도 경주부 울산군 철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때 고려의 백동제작기술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헌 속 백동 기록이 백동 합급 소재인 니켈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주석의 함유량이 30%가 넘어 백색을 띄는 합금물의 색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참고로, 연산군실록에 보이는 함경남도 단천의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은, 조선 연산군 때인 1503년에 왕 연산군 앞에서 김감불金甘佛과 김검동金儉同이 납광석에서 순은을 추출하는 화학발명으로 고전적인 회취법灰吹法(cupellation)의 일종이다. 함경남도 단천은 지금도 아연 매장량이 우리나라 첫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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