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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부부 금슬을 돋구던 명약에서 퇴치된 양귀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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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9 10:30:00

<금단의 꽃이 양귀비로 둔갑한 내력>

황선엽 교수 "'양고미'가 변한 듯"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아편 재료인 양귀비는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재배가 금지된다. 하지만 양귀비가 원래 이런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특히 한반도에서는 아편 성분이 강한 흰 꽃이 피는 품종보다는 붉은 꽃을 피우며 마약 성분도 적은 품종을 재배했다. 


홍만선(洪萬選.1643-1715) 저술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그 재배법이 소개된다. 이에 의하면 양귀비는 추석날 밤이나 중구절(重九節)인 9월 9일에 앵속각이라는 열매 껍질을 벗기고 씨만 심는다. 부부가 함께 고운 옷을 걸치고 한밤중에 마주 심으면 특히 아리따운 꽃이 핀다고도 했다. 


이로 보아 이 당시에 양귀비는 관상용 외에도 성적 흥분제를 만드는 원료로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부가 한밤중에 같이 심어야 꽃이 아름답다고 덧붙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선수'와 '아편'이 어떤 것인지를 어떤 선생에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음약(淫藥)의 재료다. 선수는 두꺼비 오줌이며 아편은 앵속각(양귀비 껍질) 진액이다."  


음약이란 미약(眉藥)이라고도 하며,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일종의 '비아그라'를 말한다. 


한데 아편 재료인 이 약초(식물)가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왜 양귀비(楊貴妃)라고 불릴까? 


국어사 전공인 황선엽 성신여대 교수가 이런 의문을 파고 들었다. 


이에 양귀비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중에 '양고미'를 발견했다. 그것을 한자로는 '陽古米' 혹은 '羊古米' 등으로 표기했다. 


황 교수가 그 출현 시대를 한글 문헌 중심으로 정리해 보니, 15-17세기 자료에 '양고미'가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던 것이 17세기말-18세기말이 되면 '양구비'로 변하고,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양귀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양귀비 뿌리인 양고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중해 원산인 양귀비가 외래 식물이며, 대체로 그것이 한반도 상륙시기가 신라말-고려시대 초기로 좁혀지는 점을 고려할 때, '양고미'가 순수 우리말일 가능성은 현격히 적다. 외래어를 그대로 옮기되 기존 식물 이름을 재활용했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더욱 크다. 




이런 맥락에서 황 교수는 양귀비 비슷한 식물로 수초 일종을 가리키는 '고미'라는 말이 오래 전부터 널리 사용된 점을 주시했다. 그에 의하면 양고미는 '양+고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그 접두어인 '양'은 무엇일까? 황 교수는 양귀비를 지칭하는 중국어 앵속(罌粟)의 '앵'이 변한 말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의한다면 양귀비는 양고미가 뿌리이며, 다시 이 말은 '앵+고미'의 합성어가 되는 셈이다. 


이런 추정이 정확하다고 할 때,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것은 그럼에도 왜 나중에는 양귀비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을까? 


황 교수는 꽃 이름에 역사상 저명한 미인 이름이 동원된 대표적인 보기로 개양귀비를 지칭하는 '우미인초'를 든다. 항우가 유방에게 패하여 죽을 때 옆을 지켰다는 그 유명한 우미인을 활용한 식물 명명법이다. 


양고미-양귀비가 소리 값이 비슷한 데다, 그 꽃은 무척 아름다우면서도 빨리 시든다는 속성이 미인과 쉽게 연결된다는 점 등이 양고미를 양귀비로 만들어 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데 양귀비의 역사를 이렇게 최종 확정하기에는 한문 문헌이 마음에 걸린다. 


황 교수에 의하면 양귀비를 '楊貴妃'로 표기하는 사례는 한글 문헌보다 빠른 17세기에 이미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구명(趙龜命.1693-1737)의 문집인 동계집(東溪集)에 수록된 '화왕본기'(花王本紀)라는 글에는 우미인과 양귀비가 꽃 이름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미 15세기에 '양고미'와 '양귀비'(혹은 '양고비')가 병존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아주 내칠 수는 없다고 황 교수는 덧붙였다. 


이와 같은 양귀비에 대한 황 교수의 탐구 여정은 최근 발간된 한국학 전문계간지 '문헌과해석' 여름호에 수록됐다.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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