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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항해루沆瀣樓, 아래로 북한산 계곡물이 흐르는 2층 누각

by taeshik.kim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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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北漢誌》는 조선왕조가 북한산성을 만들어 30년 동안 관리하다가, 다음에 오는 산성 관리자에게 그 내용을 소상히 적어 전달하고자 편찬한 지리지입니다.

북한지에는 앞머리에는 '북한도北漢圖'라는 그림이 있어 편찬 당시 북한산성 상황을 잘 알려줍니다.

북한지는 성능聖能 스님이 1745년에 인출印出했음이 밝혀져 있습니다.

제가 매양 궁금한 것은 북한산성을 만들 때 산성 안에서 제일 큰 문은 무엇이었을까요? 라는 점인데 수문水門이라고 합니다. 크기가 높이 16척에 너비 50척에 달한다고 합니다.

근데, 이 문이 30년도 지나지 않아서 수해로 날아가 버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단 이 북한도 그림에 벌써 수문이 그려져 있지 않고, 흘러가는 계류溪流만 표시되어 있으니깐요.

 

북한도



그럼, 애초에 만들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지에 그 제원이 소상히 나와 있음은 물론이고, 현지에도 바위에 수문패장水口牌將 통덕랑通德郞 서상원徐尙遠 서기書記 라는 각자가 남아 있고, 비변사등록 등에도 확인되어 수문의 역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계가 올라가 상도 받았으니, 당근 만들어졌음은 팩트일 것이고, 북한지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벌써 사라졌음이 또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 북한지가 1711년에 만들어진 사실과 1745년의 현재적 상황을 팩트에 기반하여 잘 기록되었음에 기반한다면, 뭐 사실 굳이 거짓말을 써야할 이유도 물론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제가 호기심 있게 주목하는 것은 중성문을 지나 중흥사重興寺에 이르는 사이에 있는 2층 누각인 항해루沆瀣樓가 되겠습니다.

이 항해루는 '북한도'에 그 그림이 아주 상세합니다.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죠.

또한 산영루山映樓도 따로 기록 되어있어, '항해루=산영루' 라는 설은 성립불가 합니다. 그러므로 항해루가 엄연히 2층 누각으로 멋지게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이지요.

 

북한도. 중흥사 앞쪽에 항해루가 보인다.



이 항해루가 완전 궁금해졌습니다. 하천을 지나는 2층 누관이 우리나라에 다른 곳이라도 있나요? 1745년에는 분명 있었겠군요.

북한산 오르다, 물 흐르는 2층 누각에서 잠시 쉬어가는 상상을 하니, 참으로 유쾌합니다.

땀 흘린 후, 시원한 바람 아래, 물소리와 함께 김밥 먹을 생각을 하니 말입니다.

북한지에 따르면

항해루沆瀣樓 - 중흥사重興寺 동구洞口에 있다. 개울에 걸친 언룡교偃龍橋 위에 2층 누각이 있다. 승僧 성능聖能이 창건하였다. 대제학大提學 이덕수李德壽가 지은 상량문上樑文)이 있다. 

고 했습니다.


***

이상은 경기문화재단 박현욱 선생 글이다. 그는 오랫동안 북한산성 조사연구에 헌신하는 이 분야 전업가로 탕정성과 병합한 북한산성 그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누각 이름 항해沆瀣는 본래 굴원屈原의 원유遠遊 라는 운문에 등장하기 시작해 널리 쓰이기 시작한 말로서 주로 깊은 밤중에 내리는 수기水氣를 지칭한다.

餐六氣而飮沆瀣兮 漱正陽而含朝霞 여섯 가지 기운을 먹고 항해를 마시며, 정양으로 양치하고 아침노을을 뿜는다.

왜 이 말로 누각 이름을 삼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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